https 사이트 차단을 둘러싼 이야기들
굉장히 복잡한 결이 섞여있는 문제고 그래서 다들 필요한 것만 이야기한다. 언론사들의 보도 결을 보면 이 문제를 '포르노 검열'로만 보는듯 하다. 정보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은 이 사안은 패킷감청이며 최악의 경우 '중국식 인터넷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고 한다. 또다른 편은 '야동권'에 대해서 조롱한다. 한 사안에 대해 여러 결의 이야기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뭐 어쨌든 나는 검열이 전혀 없는 인터넷 환경이나 규제 없는 웹 콘텐츠 같은 것은 불가능하단 입장이다. 혹자는 https 차단도 우회로가 있기에 무용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온갖 불법적 거래 등이 이뤄지는 딥웹도 기술적 정보만 있으면 접근은 가능하다. 반대로 기술적 정보가 없는 일반에게는 차단효과가 있다. 차단의 기술 수준이 올라갈수록 일반의 접근은 더욱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우회로가 있다'는 말을 곧바로 '규제가 무용하다'로 해석할 수는 없다.
이번에 채택한 차단방식은 패킷 일부를 열람해서 이뤄진다. 기술의 허점을 이용한 방식이다. 그런데 따져보면 정부가 직접 사이트 접속 패킷을 열람하는 건 아니다. 정부는 차단 목록을 제시하고 그 '감청 논란'이 되는 부분은 민간, ISP에서 담당한다. 그리고 이 민간 업체도 전체 패킷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일부 공개된 접속 정보만 확인한다. 이렇게만 따지자면 이 사안은 '감청' 자체와는 한발 떨어지게 된다. 규제 자체는 공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수행은 민간에서 하기 때문이다. 뭐 ISP 사업자가 이런 저런 방식으로 사용자 정보 수집하는 건 지금도 조금 논란이 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이건 좀 별건이다.
혹자는 기존 http 방식도 패킷감청 방식 아니냐며 새로운 논쟁거리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것도 그렇게만 볼수는 없다. 새로운 규제 방식이 새로운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해묵은 논란이 아니라 그간 쌓여있던 반발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나는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인터넷을 '어디까지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에 대해 답해야 할 시기. 논의의 방향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기에 '중국과 같은 인터넷 규제가 이뤄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조금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좁혀 말하자면 현행 방심위의 결정이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이해와 동떨어져있다고 볼수 있다. 한쪽에서는 '야동 규제'를 들이밀고 한쪽에서는 또 '미프진 구매경로 차단'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하다.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그걸 왜 차단하냐'고 말하고 또 한쪽에서는 '차단할만 했으니 했겠지'라고 한다. 누구도 이유를 모르고 있고 추정하고 추측할 뿐이다. 방심위가 방송쪽 규제하는 것도 보면 답답할 때가 많은데 적어도 이건 들어가서 보면 이유라도 알 수 있다. 근데 사이트 차단은 그냥 카테고리 분류만 된다. 관계부처와의 합의정도는 있다고 볼때 이건 그냥 정부발 일방규제로밖에 느끼지 못할 여지가 크단 거다. 그러니까 이제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이야기할 시점이다.
또 다른 결로는 특히 국내 성인콘텐츠 특성상 '불법촬영 범죄물'과 '저작권 위반 포르노'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거다(이 외의 콘텐츠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이 둘다 규제가 가능한 것과는 별개로 전자의 차단 요구를 달성하기 위해 후자를 어느정도 침해하는 것은 용인할 수밖에 없다. 전후자 모두 법적 보호가 될수 없단 점에서 전자가 침해하는 법익이 너무 큰데도 후자를 남겨둘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런 측면에서 '모든 차단은 나쁘다'는 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보통 '모든'이 붙은 것들은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차단 목록 전수에 대한 개별 답변까지 당장 필요하단 게 아니다. 지금 https 차단의 패킷감청 논의와는 별개로 '사이트 차단' 자체에 대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둘이 섞여서 너무 난장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