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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Oct 20. 2017

나는 그날 공항에 가지 않은 것을 아직도 후회한다.

뜨겁지 않아 미안해 (1)


"띵동" 


소리를 들었지만 하던 걸 멈추지 않았다. 나는 너로부터 수신되는 문자메시지의 소리를 다르게 지정하지도, 휴대폰 화면 위에 떠오른 알림을 힐끗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게 너란 건 쉽게 알수 있었다. 심지어 그 내용이 뭘지도.


"나 공항이야. 지금 떠나면 우린 몇달을 못봐. 아쉽지만 괜찮아. 가족이 배웅 나왔거든."


너는 서른살의 내가 눈치채기 너무 쉬울 만큼만 돌려 말했다. 하지만 스무살의 풋내기는 나보다 어렸던 너보다도 한참이나 어렸다.


"내가 정신이 없었다. 말 했잖아. 오늘 중요한 일이 있었어. 아쉽다. 오늘 보면 좋았을텐데. 공항 잘 들어가고 도착하면 연락해."


나는 최악의 말을 너에게 전송했다. 그게 너와 나 모두를 배려하는 말인줄 알았다. 그 메시지를 확인했을 때, 아마 너는 결심했을 것이다. 우리는 권태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고, 불안함에 오랫동안 시달렸던 너는 우리의 시간을 짓누르는 무게를 어떻게든 덜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네게보낸 메시지는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는 게 맞는지 힌트를 주었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예뻤던, 그 웃음기 머금은 표정으로 가족들에게 인사를 했을 너를, 스마트폰도 없었을 때 게이트 앞에서 쓸쓸하게 몇십분을 기다렸을 너를, 그리고 좁은 통로를 지나 좌석을 확인하고 선반에 짐을 실은뒤 떠남의 설렘이 무색할만큼 착잡함으로 자리를 잡았을 너를, 히드로 공항까지 가는 열시간 동안 너만 겪었던 외로움을 빠져나오기 위해 헤어짐을 천천히 상상했던 너를. 상상하기에 서울은 내게 너무 바쁜도시였다. 나는 그렇게 핑계를 대며 네 길었던 여정에 너만 남겨두었다.


저녁이 돼서야 네가 그리웠다. 네가 어느 하늘을 날고 있었을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국제문자를 보냈다.


"잘 가고 있지? 보고싶어. 우리 자주 연락해. 네가 알려준대로 스카이프도 깔고 웹캠도 샀어."


나는 여느때처럼 가느다란 애정을 네게 던졌다. 우린 늘 불공평했다. 네가 긴 고민을 끝내고 공항에 도착했을 때, 색이 바랜 내 마음은 더이상 네게 미소를 만들어주지 못했다. 너는 종종 장난치듯 내게 차갑게 굴었고 가끔 그 장난에 진심을 숨겼다.


"잘 도착했고, 정리하느라 바빠서 나중에 스카이프로 연락해"


"많이 서운했지?"


"응"


사소한 몇 마디를 더 나누고 나서야 냉랭함을 걷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날은 네가 내게 정말로 마지막 기회를 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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