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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Apr 08. 2019

나경원의 '억울함'이 거꾸로 말해주는 자유한국당의 안보

나경원은 '사태의 심각성'을 정말 몰랐던 것 같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산불이 났는데 청와대 안보실장을 붙들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한 것이다. 


나경원 대표는 5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했던 발언을 이날 오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다시 남겼다. 


나경원 대표는 ”‘(청와대 측에서)한미정상회담 준비를 해야 되니, 빨리 좀 이석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면서 ”그래도 (정의용 실장에게) 한번씩은 질의를 하게 해달라고 (홍영표 국회운영위원장에게) 했었다. ‘산불로 인한 이석’은 이야기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나경원 대표는 이어 “9시 30분쯤 돼서야 홍영표 원내대표가 갑자기 ‘불이 났는데 (정의용 실장을)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했고, 그래서 저희는 심각성을 사실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에서 서너 분이 질의를 하면 끝나게 되어있기 때문에 길어야 30분이라고 생각을 해서 ‘하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나경원 대표는 이어 ”저희로서 유감스러운 게 그 당시에 심각성을 보고하고, 정말 이석이 필요하다면 이석에 대한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그런 말씀이 전무했기 때문에 상황 파악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 언론에서 이상하게 쓰고 있는데, 상황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계시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나경원 대표의 발언 맥락은 쉽게 이야기해서 ‘산불 이야기가 없다가 갑자기 산불 이야기를 시작했기에 우리는 심각성을 몰랐다’는 말로 줄일 수 있다.




고성 산불이 최초 접수된 시각은 19시 17분이다. 청와대에 산불이 보고된 시각은 19시 40분이다. 홍영표 운영위원장이 정의용 실장에 대한 이석을 요구한 시간은 19시 45분이다. 물론 이때는 나경원 의원의 말처럼 정의용 의장이 이석을 해야 하는 이유를 ‘한미정상회담‘으로 설명했다. 사건이 벌어진 시간을 놓고 볼 때 정의용 실장이 ‘급한 상황을 인지하고서 이석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당시에는 산불에 대한 심각성을 설명하지는 않고 다른 이유를 댔다. 따라서 나경원 의원의 항변도 이해할 수 있다.




정의용 실장에 대한 이석 요구는 21시가 넘어서 한번 더 나왔다. 이때는 산불 상황이 매우 심각해진 상태다. 정부는 20시 22분 대응 2단계를 발령했고 20시 46분 부터 는 진화작업을 위해 서울 경기 지역 등에 소방력 지원을 요청했다. 여러 지자체와 관계부처가 업무처리를 해야 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신속 정확한 대응을 위한 ‘콘트롤 타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래 이야기는 국회TV에 촬영된 4일 국회운영위원회 현장에서 발췌한 것이다.


21시 32분

홍영표 위원장 : 지금 언론에도 크게 보도가 되고 있는데, 고성 산불 문제를 얼마나 파악하고 계신가? 안보 실장(정의용)님 말씀해달라.

정의용 실장 : 오늘 저녁 7시 반경에 변압기에서 발화돼 고성군에서 시작해 바람이 동향으로 불어서 속초 시내까지 번지고 있다. 민간인 대피령 내렸고 소방차 50대 동원했고. 헬기는 야간이기 때문에 작동 못하고 있다. 1차장을 위기관리센터로 보내 관리토록 했다.

홍영표 : 속초 시내에도 일부 주민 대피령이 내린 것 같다 굉장히 상황이 심각한데 정의용 안보실장은 이 건에 대해서도 지휘를 하셔야 하는데 그걸 감안해서 위원님들이 감안해서 질의해 주시라. 추가 질의 없으시면 이석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

22시 02분

홍영표 : 고성 산불이 굉장히 심각한 것 같다. 민간인들 대피까지 시키고 있고. 위기 대응 총 책임자다 (야당에) 양해를 구했더니 안된다(고 한다) 시간을 보내고 있어 안타깝다. 그래서 지금부터 저도 효과적으로 진행할 테니 협조해달라. 저는 잘 모르겠다. 국회에서 저렇게 대형 사고가 생겨서 산불이 생겨서 민간인 대피까지 하고 있는데, 대응을 해야 할 책임자를 이석을 시킬 수 없다는 게 옳은지 모르겠다.

나경원 : 고성 산불 부분도 그렇다. 저도 정의용 안보실장 빨리 보내고 싶다. 그럼 순서를 조정했으면 됐다. 먼저 야당 의원들 (질의)하게 했으면 빨리 보냈다. 안보실장은 질문할 때까지 조금 계시고 다른 비서관 먼저 가셔도 좋다 이야기했다. 생방송에서 저희가 방해하는 것처럼 말씀 하시면 안된다. 청와대 한 번 부르기 쉽냐. 그렇게 이야기하지 마시라.



당시 국회 운영위 회의에서 ‘민간인이 대피하고 있다‘는 말은 세번 나왔다. 앞서 ‘한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을 때는 나경원 대표가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9시 25분부터 속개된 회의에서는 다르다. 민간인이 대피하고 있다는 말, 산불이 굉장히 심각하다는 말, 정의용 안보 실장이 이 산불 대응을 책임져야 하는 콘트롤 타워라는 말이 나왔다. 이정도면 상황의 중대함을 인식해야 한다.


나경원 의원은 ‘야당이 정의용 실장을 묶어뒀다‘는 비판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이상하게 쓰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항변하기 위해 ‘홍영표 위원장이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그 변명이 진심이라면 나경원은 ‘민간인이 대피하고 있다’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5년 전 우리 앞에 닥쳤던 큰 재난 앞에서 어떤 정부가 했던 대응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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