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을 석방하라"는 구호에 대해
"한상균을 석방하라"
나는 이 구호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종의 과잉불안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뭐에 대한 불안이냐 하면 여태까지 쭉 이야기되었던 '순수성=비정치성'에 대한 불안.
한상균 위원장은 작년에 벌어진 몇차례의 민중총궐기에 대한 책임으로 구속되었다. 물론 한상균위원장만 처벌받은 것은 아니나 한상균 위원장에게 내려진 초심 5년의 형은 그간 벌어진 반정부시위에 대해 대표격으로 처벌되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정도로 과하다.
작년 민중총궐기는 무엇을 이야기했나, 그것이 그렇게 정치적인가 생각해 볼때. 협의의 정치로 해석할 때 최근의 탄핵국면이 더 정치적이다. 작년 민중총궐기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총체적 불만의 표출이었다. 공권력과 시민의 힘은 원래부터 불균형이었다. 때문에 각각의 목소리를 한 공간에 두어 말 그대로의 '시위'를 할 필요가 있었을 거고 한상균위원장을 위시한 민주노총은 노동개악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고 백남기 농민은 쌀값 수매가 공약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시민의 힘이 미약했던 탓에, 지금과 같은 국면이 아니었던 탓에 노동개악을 '정상화'시킬수는 없었다. 올해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고 각 기업 노조들이 파업까지 내걸며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작년 박근혜정부가 밀어붙였던 바로 그 노동개악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노동개악이 (좋든 나쁘든)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 중 하나가 아니라 기업들의 로비에 대한 대가였다는 정황이 슬슬 밝혀지고 있다.
지금 박근혜에 대한 탄핵국면은 '원인'에 대한 책임이었다. 국정농단 - 헌법위반의 원인이 최순실등을 포함한 측근의 비리 때문임이 밝혀졌고 사람들은 여기에 분노했다. 하지만 이 원인이 물음표였을 한 해 전에는 그 국정농단의 결과에 대해 각계가 시름하고 있었다. 이상한 정책들이 쏟아졌고 지표들은 망가졌으며 나아질 기미가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정부와 뉴스는 '아무 문제 없다'는 소리만 되풀이했다. 미약한 시민의 목소리, 지금 무엇인가가 망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작년 겨울 시민들이 모였고 그 결과 한상균은 구속되었고 백남기 농민은 공권력에 살해되었다.
우리 모두 결과를 몸소 느끼고 있었지만 그 책임을 명확히 돌리기 힘들어, 그저 외면하고 있었던 지난 몇년이었다. 내 호오와는 별개로 통합진보당은 부당하게 해체되었다. 역사에 길이남을만한 정치탄압이었다. 아무리 싫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벌이면 안되는 일이었다. '이석기를 석방하라'는 구호도 그래서 용인되어야 한다. 특정 정당이, 그 정당의 대표격인 자가, 개인의 호오에 의해 해산되었던 이 반민주적인 결과 역시 이 정부의 작품이었다. 드레퓌스를 위해 변론한 에밀졸라가 왜 지금까지 기억되는지 우리는 되짚어봐야 한다.
같이 외치란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누군가는 한상균위원장이 여전히 노동계를 대표하지 못한다고 생각할수도 있고 통진당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아 사라졌으면 좋겠었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광장에서 그 목소리가 지워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것은 광장이 우리의 모두의 것이라는 일차적인 변호에 그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현재 우리가 싸우고 있는 부당한 권력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 목소리를 감히 치울 자격은 없다.
맨처음으로 돌아가서 만약 광장에서는 '공적인 목소리'만 허용되어야 한다면 공적이며 비정치적인 것과 사적이며 정치적인 것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광장은 욕망을 분출하면 안되는 곳이며 사익에 대한 추구는 밀실에서만 이뤄져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기꺼이 아파트값을 위해 부도덕한 후보를 지지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 하지 않으면서 광장에서 "한상균을 석방하라"고 외치는 구호는 과하게 경계할까?
앞서 길게 늘어놓은 설명은 '한상균을 석방하라'라는 구호가 딱히 사적이지도 않으며 개인의 인신에 관한 문제 정도가 아니라 부당한 노동개혁과 공권력에 개인/단체를 향한 탄압이라는 공적이며 민주적 절차 원칙의 문제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보다더 더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의 문제' 따위는 원래부터 없다. 지금도 4%의 사람들은 박근헤의 탄핵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그 사람들은 96%의 사람들의 문제제기를 다분히 '사적'으로 여기어 질수도 있다. '한상균을 석방하라'는 구호가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에 노동개악법안에 대한 논의나 집회시위에 관한 공권력의 대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본 대부분의 말은 '우리 모두의 의견에 숟가락을 얹지 마라'는 이야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누구의 말도 '사적인' 것이 될 수 있으며 따라서 누구의 말도 지워질 수 있다. 96%의 지지를 받을만한 의견은 쉬이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