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한국에 살고 있는데, 여전히 이방인이다.
마르세유는 이방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곳이었다. 유별난 언어를 쓰는 극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살던 이에게, 마르세유의 이질감은 그저 한국인을 위한 이정표 하나 없음 정도가 아니었다. 시선은 적당히 차가웠으며 관광객을 위한 호혜적인 가식이 없었다. 그들은 굳이 이방인을 배려하지 않았다. 그래야 할 문화적 압박도, 경제적 이득도 없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은 날것에 가까웠다.
구-항구역 뒤편에 있는 시장 골목을 서성이고 있었다. 늘 두리번거리던 시선,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던 발걸음. 나는 누가 봐도 이방인임을 한 번에 알만큼 티를 내고 다녔다. 한참을 그렇게 서성이는 동안 어스름이 커튼처럼 내려와 돌아갈 때를 알렸다.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찰나, 저쪽 뒤편에서 문득 두려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만큼, 혹은 나보다 더 큰 키의 남자 셋은 슬슬 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뜸해진 인적 탓일까? 어두워져 예민해진 탓일까?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나를 향한 게 맞았다. 나는 마르세유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리고 믿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나를 그대로 지나쳐갈 것이란 확신이 없었다. 나도 발걸음을 돌렸다.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도망가는 티를 가급적 내지 않으면서 최대한 빠르게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 걸었다. 그들도 적당히만 위협적인 모습으로 한참동안 나를 따라왔다.
누구도 나를 보호해주지 못할 거란 불안감, 그리고 인터넷 사이트 어딘가에서 봤던 잔인한 이야기들. 이 동네가 유럽에서 제일 위험한 곳이라던 악명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도망쳐야만 했다. 그게 최선이었다. 누군가는 이 불안감이 과한 것이며,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따라오던 세 남성을 뒤에 둔 나에게, 그런 말들이 위로가 될 수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이방인에 불과했다.
한참을 걷다 눈에 보이는 가게로 들어갔다. 천천히 물건으로 고르고 고개를 빼꼼 내밀자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정말 나를 쫓은 걸까? 내가 예민했던 걸까? 지금에서 다시 생각해보니 잘 모르겠다. 이방인의 지위란 원래 그런 것이라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씻고 침대에 누워 도망치다 들렀던 가게에서 샀던 크로넨버그 맥주를 머금고 잠에 들었다.
한국에 돌아왔다. 친구가 이어폰을 건네며 녹음파일 하나를 들려주었다. 이십 몇분 쯤 되는 그 녹음 파일은 도통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이따금 기침소리가 들렸을 뿐, 사소하고 건조한 대화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런 파일이 열세 개나 되었다. 대체 이런 쓸데없는 걸 왜 들려 주냐고 묻자 친구는 별거 아닌 듯 대답했다.
“나도 뭔지 몰라서 들어봤는데 보니까 택시 탈 때 녹음했던 거더라고.
그냥, 혹시 무슨일 생길지 모르잖아.”
어떤 사람들은 한국에 살고 있는데, 여전히 이방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