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일상⑭〉한 걸음 뒤에서

by 최선근

〈캐디일상⑭〉한 걸음 뒤에서



골프장에서 캐디는 늘 한 걸음 뒤에 선다.
그 거리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손님의 시야에 방해되지 않는 자리.


라운드가 시작되면
나는 손님의 움직임을 조용히 따라간다.
그들의 스윙 리듬과 말투,
그리고 클럽을 잡는 손끝까지 눈여겨본다.


홀 사이를 걸을 때면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요히 침묵을 지킨다.
캐디는 말이 많을수록 좋은 것도,
적을수록 좋은 것도 아니다.
상황에 맞춰 흐름을 읽는 것이 전부다.


멀리서 바람이 코스를 스친다.
잔디 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인 향이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한 걸음 뒤에서
이 코스의 모든 계절과 모든 순간을 함께 겪는다.


그러다 홀 사이, 짧은 대기 시간에
손님이 나를 향해
말없이 미소를 지을 때가 있다.
그건 작은 인정이자 조용한 감사의 표현이다.
그 한 번의 웃음이
이 일을 버티게 하는 보람이 된다.



14화.jpg

“이 글은 시리즈 〈캐디일상〉 중 열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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