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디일상⑯〉비가 몰려올 때

by 최선근

〈캐디일상⑯〉비가 몰려올 때



라운드가 중반을 넘어갈 즈음,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더니
공이 평소보다 덜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스쳐 지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잔디 위에 둥근 빗방울이 맺히기 시작하더니
곧 굵은 비가 쏟아졌다.


이럴 땐 우산을 펴는 일보다
카트 앞, 옆, 뒤에 붙어 있는 풍우막을
재빨리 내리는 게 먼저다.
손님이 앉는 시트와 골프백을 지키기 위해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예보가 있는 날이면
아예 라운드 전부터 우비를 입거나
빗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우비를 꺼내 입는다.


비가 심해지면 선택이 필요하다.
‘홀아웃’—경기를 끝내고 들어가는 것.
낙뢰 예보가 있으면 골프장에서 강제로 진행하고,
폭우가 쏟아지면 90%의 내장객은
미련 없이 클럽하우스로 돌아간다.


하지만 나머지 10%는
우중(雨中) 라운드를 이어간다.
그 순간 캐디와 손님은
말 그대로 함께 미쳐버린다.
폭우 속에서 치는 골프는
정상적인 플레이가 아니다.
그냥, 웃으며 치는 거다.


그리고 그날은
좋든 나쁘든 오래 기억에 남는다.



16화.jpg

“이 글은 시리즈 〈캐디일상〉 중 열여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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