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과 노동개혁 5대 법안
우리나라에서 큰 이슈가 됬었던 단통법과 현재 큰 이슈인 노동개혁 5대 법안. 먼저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을 보자면 한쪽에선 단통법 이후에 우리가 흔히 '공짜폰'이라 말하던 것이 사라졌고, 시행 1년 후에는 전 국민 호갱화(호구 고객의 준말)됐다며 시민들이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다른 한쪽에선 노동 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 타협이 성사되었지만 곧 파기되었다. 법이 통과되지 않자, 박근혜 대통령은 법을 통과시키지 않은 국회를 비난하고 법안 통과를 위한 전 국민 서명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나는 두 법을 보면서 우리나라 경제 정책은 어느 노선을 택하고 있나 궁금해졌다. 아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단통법과 노동개혁 5대 법안은 각 노선의 단점만을 채택한 법이란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노선이라는 것은 큰 정부와 작은 정부를 의미한다. 분류해 보자면 단통법은 큰 정부를, 노동개혁 5대 법안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큰 정부와 작은 정부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큰 정부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로 경제를 이끌어 가는 것을 의미하고, 작은 정부는 최소한의 역할로 모든 경제상황을 시장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과거에는 큰 정부로 경제가 발전한 대표적인 나라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고 세금을 감면하여 대기업 위주의 급격한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다. 지금 현재는 작은 정부를 표방하는 것처럼 보인다.(왜냐하면 세계 어느 나라든 보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표방하며, 진보는 복지국가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정부든 노선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큰 줄기를 어느 방향으로 잡느냐에 따라 나눠질 수는 있다. 요즘 정부들은 큰 정부의 장점, 작은 정부의 장점을 가져와 혼합하는 것을 즐겨 사용한다.)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 큰 정부와 작은 정부에도 '형평성과 효율성'이라는 두 가지 양면이 존재한다. 큰 정부는 형평성이라는 측면에서, 작은 정부는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각각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상대편의 장점은 곧 나의 단점이 된다. (더 깊이 들어가면 무 자르듯 형평성과 효율성을 나눌 수는 없지만 큰 줄기는 그렇다.) 많은 정부들이 이미 큰 줄기 안에서 서로의 노선의 장점을 가져와 사용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 정책은 작은 정부가 있어야 할 때 큰 정부 정책을 사용하며, 큰 정부 역할을 해야 할 때 작은 정부 역할을 자처한다. 한 마디로 효율성이 있어야 할 부분에 형평성을 들이대며, 형평성이 있어야 할 부분에 효율성이 들어서 있다.
단통법은 '누구나 같은 가격에 핸드폰을 살 수 있게 하자'는 취지의 법이다. 정부가 통신사의 보조금을 제한하는 것, 그리고 형평성에 맞는 법이니 큰 정부의 역할을 한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통신사들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됐다. 단통법 이전을 보면 이곳에 왜 작은 정부의 역할이 필요했는지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단통법 이전에는 통신사들은 자신들의 통신사에 가입시키기 위해 보조금이라는 것을 투입한다. 예를 들면 LG에서 20억의 보조금을 투입한다면 사람들은 보조금이 높은 LG를 선택하게 된다. 이를 본 SK는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그 보다 높은 25억을 투입하고, KT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경쟁이 심하다 보니 예전에는 '공짜폰'을 구입하기 어렵지 않았다. 경쟁을 통해서 시장에서 가격이 알아서 낮아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작은 정부의 장점이다. 그러나 단통법 이후에는 작은 정부의 장점을 사라졌고, 큰 정부의 단점이 부각되었다.
<참고- SBS 단통법의 비밀 https://www.youtube.com/watch?v=TEcsmEjBSYs>
노동개혁 5대 법안은 간단하게 말하면 '노동유연화를 통한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법이다. 누군가는 해고가 더 어려워지는 법이다 혹은 노동자를 위하는 법이다 하지만 다 재껴두고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과 노동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 중의 하나는 '해고'다. 유휴노동력(잉여노동력)을 줄이면 기업의 재무구조는 좋아지기 마련이다. 한국의 노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에선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현재보다 좀 더 강화하기 위해서는 첫째, 정규직에 대한 보호 수준을 지금보다 뚜렷하게 완화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아무리 포장하고 감싸려 해도 노동유연화는 해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동자의 보호에 대한 정부의 역할 감소, 그 이후 기업의 효율성 강화는 작은 정부의 역할이라고 보인다.
그렇다면 해고가 더 유연하게 이루어지는 대신 정부가 그것을 대신할만한 사회 안전망을 갖추고 있는가? 난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이다. 백번 양보해서 해고가 자유롭게 이루어진다고 가정한다면, 그 이전에 그 사람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 다시 말해 큰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시점인데도 정부는 작은 정부를 자처한다. 대표적인 예가 실업 급여다. 현행 실업급여는 금액 하한 최저 임금 90%, 180일 이상 근무한 자에게 해당한다. 반면 노동개혁 5대 법안에서는 최저임금 80%, 270일 이상 근무하는 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도대체 왜 단통법에선 그리도 큰 정부 역할을 자처하는 분들이 이 부분에선 작아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
* 남성일 외, 2007, 「한국의 노동 어떻게 할 것인가」, 『서강대학교 출판부』p.91
이제 까지 우리는 단통법과 노동개혁 5개 법안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살펴보았다. 신기한 것은 성질이 다른 두 가지 법에도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두 법 모두 기업을 위한 법이다. 단통법으로 통신사는 엄청난 이득을 보았고, 노동개혁 5개 법안이 통과가 되면 기업들은 인건비 절약을 통해 한층 더 경쟁력을 갖출 것이다. 물론 나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법을 제정할 때는 그것이 가져올 영향을 생각해 볼 수는 없는 것인지, 또한 왜 필요한 곳에 정부의 제제가 들어가지 않고 엉뚱한 곳에 손을 대는지.
정부는 누구를 위해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