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나를 대입하기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혼자 일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일을
자연보다는 박물관을
틀에 박힌 일보다는 자유로운 일을
고민을 즐기는 것을
한국의 삶보다 해외의 삶을
공부하는 것을
계획적인 것보다 무계획적인 것을
평범한 삶보다 대단한 삶을
하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무지를 고백해야 했다. 작년 35일간의 유럽여행은 진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가 자연보다 박물관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으레 책과 박물관을 동일시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스위스의 높은 산맥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나와 박물관에서 하품을 쩍쩍하는 나는 내 '기대'와는 달랐던 진짜 나였다.
'나는 해외에서 사는 게 더 맞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그저 내 '희망사항'에 불과했음을 경험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틈에서 산다는 것. 내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지역에 산다는 것. 우리와 다른 문화를 가진 지역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었다. 상상으로는 닿을 수 없는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나는 천천히 진짜 나를 보았다.
경제에 대한 책을 보면서 경제학도의 꿈을 꾸었다. 그러나 실제 공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특히 수학적인 부분을 많이 사용하는 과목은 쥐약이었다. 오히려 부전공으로 들었던 국문학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훨씬 재미도 있었고.
나를 잘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괴리는 직장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틀에 박혀서 시키는 데로 하는 것이 뭐가 좋은가?"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오면서, 어느새 나는 "자유롭게 일하는 것"이 잘 맞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자유롭게 일하는 것이 편하게 앉아서 쉬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어려웠다. 새로운 것을 계속 생각해 내야 하는 고민을 계속 해내야 했다. 시키는 일만 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막막할 때도 있다. '치열하게 살아내야 한다.'는 고뇌와 함께 자유와 책임은 동의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오히려 틀에 박힌 일이 얼마나 나에게 잘 맞는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누가 치열하고 싶은가 누가 고민하고 싶은가, 너무 현실을 모르는 소리를 한다"고
나는 그런 걸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더 잘 맞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나를 더 잘 알아야 그나마 더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을 증명하는 아주 강력한 예가 신입사원의 퇴사 시기이다. 신입사원이 46%는 1개월 이내에 퇴사한다. 그 이유는 위의 예와 다르지 않다. 나에게 잘 맞는 일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해보니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물론 나도 직장에서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을 바라지도 않고, 그런 직장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주로 하는 일(적어도 60% 이상은)이 내가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껏 우리는 자소서를 쓰면서 그 회사들의 인재상에 우리를 맞춰야 했다. 혹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우리를 맞추어갔다.
어떤 때는 내가 되고 싶었던 '어떤 것'을 내 것 인냥 착각했다.
이런 종류의 것들은 '경험'이라는 거울 앞에 그 민낯을 드러내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실제로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생각만 하지 말고 경험해봐라. 기자가 되고 싶다면 실제로 기사를 써봐라. 그리고 기사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라. 그래야만 네가 글 쓰는데 재능이 있는지, 그 일을 하면서 실제로 즐거운지를 알 수 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결국은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시킬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한 문장이 번뜩 떠올랐다.
분수에 맞게 살아라.
그래.
모든 그릇이 고급 요리를 담는 그릇이 될 수 없듯이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듯이
나 자신도 그런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