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판 Les Misérables,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영국판 Les Misérables,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
19세기 프랑스 배경을 바탕으로 쓴 빅토르 위고의 소설. 흔히 ‘장발장’으로 알려진,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이 프랑스에 있다면. 영국에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있다. 이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혁명과 전쟁으로 격동하던 당시 사회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그 속에 사람들 사이의 오고 가는 교감과 사랑을 통해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데 있다.
지난가을, 경주 독립 책방을 여행하다가 두 남녀가 뜨겁게 키스를 하고 있는 영화의 포스터를 발견했다. ‘건지’라는 큰 타이틀 아래에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로고가 새겨진 영국식 복고 감성이 오롯 새겨진. 처음엔 단순히, 북클럽에서 만나 문학을 통해 교감하는 단순한 두 남녀의 로맨스 일거라 생각했다. ‘건지 Gunernsey’의 역사적 배경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까진.
프랑스 북쪽 해안에서 멀지 않은 채널제도에는 여러 섬이 있는데, 프랑스 노르망디와 가깝지만 프랑스 영토가 아니다. 두 개의 큰 섬이 있는데 ‘건지’는 그중 하나다. 이 채널제도에 있는 모든 섬은 나치 독일 점령에 점령당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시점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시작이 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줄리엣 애쉬턴.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 후, 아직 전쟁의 아픔이 채 씻기지 않은 채로, 도시는 축제 분위기로 젖었고. 사랑하는 연인의 사랑도, 명예와 부도 모두 얻었지만 갑자기 걸치게 된 그 화려한 자리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던 줄리엣에게 한 통의 편지가 온다.
그 편지는 건지 섬에 농작물과 가축을 기르는 일을 하며 사는, 도시 애덤스라는 남자에게서 온. 도시는 전쟁 중 읽게 된 줄리엣의 수필집을 읽고, 그 책의 속지에 적혀 있던 줄리엣의 주소로 감사편지를 보낸 것이었다.
“우리네 삶은 다를 지라도,
책은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죠”
편지에는 ‘건지 섬’에서의 생활과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탄생한 연유. 어떻게 줄리엣의 책과 주소를 발견하게 되었는지. 그 책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의 사람들에게 교감을 통해 어떤 따스한 위로를 건넸는지 등등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북클럽에 큰 흥미를 느끼게 된 줄리엣은 북클럽의 이야기를 새롭운 책에 담고자 건지 섬으로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전쟁에 남겨진 아픈 단상들과 직접 마주하게 되는데.
건지 섬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환영했고, 편지를 보낸 도시를 비롯하여 모든 회원들을 만났지만, 엘리자베스만 없었다. 그녀의 4살 베기 딸, 킷만 있을 뿐. 킷은 노모인 모 저리 부인과 도시가 돌보고 있었다. 도시를 ‘아빠’라 부르는 킷. 하지만 도시는 킷의 진짜 아빠가 아니었고, 그의 친구 독일 장교 크리스천 헬먼과 엘리자베스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독일군에게 남편과 딸을 잃은 모 저리 부인은 딸의 친구로 유일하게 자신에게 남겨진 가족 엘리자베스가 독일군과 만나는 것을 극심하게 반대했지만. 독일로 귀향하던 중 폭격을 맞아 차가운 바다에서 죽은 크리스천이 죽고, 수용소로 끌려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엘리자베스를 기다리며 그들의 사랑의 결실로 얻은 딸 ‘킷’을 거두었다. 그래서 줄리엣이 북클럽의 소재를 책으로 쓴다는 말에 격분한다. ‘킷’을 끝까지 보호하는 것으로 죄책감을 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외에도 건지 섬 곳곳에는 전쟁이 남긴 상처가 남아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홀로 채널제도를 넘어 본토로 피난을 갔으며, 라일락꽃이 흐느러지게 나풀거리는 섬에선 수많은 포로와 노예들이 고된 노역과 굶주림에 죽어 나갔다. 그들에게는 감자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건지 섬의 주민들은 가지고 있는 재산과 가축을 잃고, ‘감자’로 연명하면서 그 것으로 파이를 만들었다. ‘술’없이 결코 넘길 수 없는 버터와 밀가루 일절 첨부하지 않은 그 파이를 삼삼오오 모여앉아 처음 맛보던 날, 북클럽도 탄생하게 됐다.
그들에게 배고픔보다 더 힘든 건,
사람의 따뜻한 온기와 교감의 부재였다.
독일군의 감시를 피해 결성할 수 있었던 그들의 유일한 소통과 교감의 결성체가 문학회였던 것이다. 책은 암흑 속 역사의 작은 희망과 윤활유가 되어 퍼져나갔고, 그 책을 매개로 사람들은 소통해나갔다.
“생명부지 사람과도 유대감이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이미 그렇게 된 거예요.”
‘상처 입은 영혼’인 동시에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회원들은 생면부지의 줄리엣을 만났고, 그 곳에서 눈물을 포개어 마주한 상처를 통해 줄리엣은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또한, 자신이 쓰는 글과 걸어가야 할 삶의 정체성을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고, 다시 건지 섬으로 가는 배에 오른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 것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글을 쓸 것인가?
끊임없이 물었던, 지난 날. 젊음을 다하는 날까지. 꺼이꺼이 삶을 불태워 영원히 남겨야 할 것에 대한 질문. 그 해답을 영화가 모두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글은 사람과 사람을 묶어주는 영혼의 떨림이자,
세상을 열어주는 마음이 창이다.
아직, ‘에세이스트’라 말하기엔 글 솜씨가 어줍지만, 이 것은 내가 다시 습작을 시작한 연유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나 ‘소수’에게 ‘다정한 친구’였지만, ‘다수’에겐 지독한 ‘에고이스트’로 비춰져왔다. 습작되는 모든 시간은 세상과 연결되는 영혼의 실이 되어 ‘에세이스트’로 거듭되어져 나가고 있다. 때론 이 시간의 무게가 삶을 짓누를 지라도 모든 과정을 통해 내 마음에도 타인에 대한 사랑과 긍휼이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흘러가기를 기도하게 되는 아늑한 밤이다.
2020. 2. 6 상처입은 치유자. 조용한게릴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