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라티고, <결혼하고도 싱글로 사는 법>
영화, 연극, 음악, 강좌, 모임 등 문화와 예술 공간으로 다양하게 쓰여 지고 있는 수영구의 문화복합공간. 매월 둘째, 넷째 수요일에 프랑스 영화 상영회가 있다는 광고를 보고, 처음으로 이 공간을 찾았다. 우중산책.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구글맵을 검색해 가다보니,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인적 드문 골목을 조금만 비집고 들어가니, 빗소리와 비 냄새로 가득 찬 조용한 주택가. 차가운 빗줄기를 따뜻한 불빛으로 홀로 태우고 있는 하얀 집이 나왔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황급히 접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 빈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자마자 간략한 공간설명과 함께 영화가 시작됐다.
Prete-Moi Ta Main. 원제는 ‘Rent A Wife’.
왠지 원제가 영화의 내용을 더 심플하게 대변하는듯한 프랑스판 로맨틱 코미디, 결혼하고도 싱글로 사는 법. 프랑스의 연애관, 부부관, 결혼관을 유쾌하게 드려다 볼 수 있는 영화다.
능력만 있는 루이스와 콧대 높은 엠마. 그들은 결혼에 도통 관심이 없고, 싱글라이프에 200% 만족하며 살아가는 흔히 말하는 노총각 노처녀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일을 아주 사랑하는 워커홀릭이다. ‘향기’를 만드는 조향사로 일하는 루이스와 ‘고가구’를 복원하는 고가구복원상으로 등장하는 엠마. 두 사람의 직업은 독특하고 매력적임과 동시에, 낡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를 재현하고 불러일으키는데서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루이스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의 족쇄는 물론이거니와 여자친구 역시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머니와 6명의 여자형제들은 그를 어떻게든 결혼시키자 성화다. 이런 극성인 홀어머니와 여자형제들 때문에 루이스는 이미 첫사랑과 헤어진 아픈 역사가 있다. 43세에 ‘삐뿌’라 불리는 남자, 기세등등한 여자형제들과 어머니 사이에 그는 유약했고, 어린아이와 같았다.
첫사랑과 헤어진 이 후, 루이스는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도, 사랑을 소유하지 않으려는 그의 일관적인 태도 중 하나였다. 첫사랑과 영원한 이별을 고하던 날, 펄럭이던 스카프의 보랏빛, 그리고 향기. 그의 사랑은 오직 향기를 통해서만 소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루이스는 그 향기를 재현하고자 조향사가 됐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향수’는 이별을 통해 탄생되는 것이었고,
오직 ‘향수’를 통해서 그는 잃어버린 사랑을 소유할 수 있었으니까.
반면, 엠마는 결혼은 원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되고 싶은 단 하나의 꿈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홀홀단신 싱글녀로 입양을 결심하지만, ‘남편’이 없다는 이유로 큰 장벽에 맞닥뜨리게 되고, 필요에 의해 루이스와의 계약을 맺고, 위장 연애와 결혼에 돌입하게 되는데.
시작이 어찌되었건, 새로운 사랑으로 ‘주체’가 없던 두 남녀가 만나 ‘주체’를 가지고, 그 사랑으로 인해 ‘가족’이 탄생한다는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결말은 맺는다. 끝까지 ‘결혼’을 거부하는 두 사람의 태도는 사랑의 상처로 인해 생긴 ‘방어기제’로 극명하게 드러나지만 결국, 진짜 사랑을 만나면 모든 것은 다시 복원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냥 각자의 싱글라이프를 다시 존중하면서, 유유히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는 프랑스 영화다운 결말도 나올 법도 한데, 지극히 미국식 결말이라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기도 하다. 망명인과 이방인의 나라.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성립되고 ‘팍스’(사실혼을 인정하는 프랑스의 제도)를 결혼제도 안에 따로 만들어 놓은 프랑스라면, 충분히 진부하지 않은 쿨한 결말을 만들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
하지만 단일민족으로 자리 잡은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중심의 공동체와 전체주의가 만연하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결혼이, 사회적인 관습과 제도 사람들의 시선 안에서 진정한 사랑의 본질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기는 하다. 그래서 싱글라이프를 동경하면서도 결혼을 생각 할 수 밖에 없고, 결혼을 하고 싶어도 놓여진 현실 앞에 사랑의 본질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현실에서는 참 어렵다.
결혼적령기에 놓인 남녀라면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서글퍼질 수는 있으나. 영화의 결말과 같이, 언젠가 진짜 사랑을 만난다면, 어떤 제도와 문화의 장벽도 허물고, 부러지고 무너진 상처도 복원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