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오후의 에세이
퇴근 길, 골목길 숨은 책방마실. 오늘 책방은 보수동 책방거리에 위치한 마이유니버스. 독립출판물을 뒤적이다가, “이 작가, 부산사람 아닌가요?” 눈에 띄는 이름을 발견하고 책방 주인에게 물었다. “네, 몇 일전에도 오셨다 가셨어요. 혹시 아시는 분이세요?” 역시나 싶었다. “아주 오래 전, 서원에서 만났어요. 문학프로그램 때문에!” 짧게 말을 끊으니 “얼마 전, 신춘문예 소설 당선 되셨는데, 필력이 좋아요. 글도 술술 읽히고. 예전엔 어떤 분이셨어요?” 이어 물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주 무례한 친구였고, 아주 용감한 청년이었지요.”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건, 그 해 문화체육관광부 사업의 일환으로 부산시내 청년 20명을 대상으로 지원하던 ’청년, 시대를 품다’라는 청년 인문학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나는 캐나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진로의 방향과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던 때였는데 같은 과 선배가 서류 마감 당일 저녁에 청년 20명을 대상으로 인문학교육을 지원한다는 정보를 보내왔다. 교육기관은 전국적으로 독서교육으로는 이미 정평이나 있는 아주 유명한 곳이었는데, 서류를 넣을까 말까 한 참 고민을 했다. 오래 전, 해당 기관의 프로그램을 사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학생기자로 부대보로 취재를 하러 갔다가 기관의 대표에게 따끔한 핀잔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 짧게 입은 수치를 깨고, 마감 3시간을 앞두고 후루룩 독후감상문 1편과 영화감상문 1편을 제출했다. 왠지, 커다란 파도처럼 다가온 그 기회가 파도와 운명의 주인과 영혼의 선장으로 내 삶을 바꾸어 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그렇게 허술했던 나의 지원서는 패기와 진정성만으로 엄청난 경쟁을 뚫고 20명 안에 간당간당 들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운명처럼 청년이었던 그 친구를 처음 만났다.
그 친구의 20대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친구는 간절히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세부적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모두가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어, 먹고 사는 문제에 치우쳐 전전긍긍 일 때도, 멈추지 않고 소설을 썼다.
그 친구를 마지막으로 본 건, 그 해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방송작가로 방향을 틀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근심을 한 아름 안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몇몇 방송사의 제의가 있었음에도 그 친구는 당당하게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자신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꿋꿋하게 습작활동을 이어나가는 그 친구가 미련해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단, “막내작가로라도 방송국으로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는 말을 꺼내자마자. “방송국에서 그런 글을 쓸 바엔 글을 쓰지 않겠다.” 냉담하게 한마디 툭! 내던지고서, 세상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한 번 쏘아 보고는 휙 돌아서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지하도로 씩씩하게 홀로 걸어 내려가던 그 뒷모습이 생생한데, 그 일이 벌써 5년이 넘었다.
그 땐, 여린 마음에 그렇게 내 가슴에 돌을 던지고 가던 그 태연한 뒷모습이 어찌나 매섭고 황당했던지. 얄밉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은 피식피식 웃음만 나온다. “그래, 너도 한 고집했지. 꿈을 이루었구나! 김작가, 이젠 하고 싶은 거 다해.” 소리 없이 그녀를 응원했다. 그리고 그 친구를 처음 만났던 때, 사뭇 집요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훑으며 물었던 질문을 떠올려본다.
“꿈이 무엇이느냐?”고.
난 사실 그 때, 뚜렷한 꿈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청년’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때, 내 유일한 꿈은 정말 ‘청년’이었다. 서른이 되어 다시 되물어본다.
“진정 ‘청년’으로 잘 살고 있느냐?”고
그리고 2개월이 흐른 어제, 다시 만난 그 사람.
20대의 품었던 꿈을 하나 이루고, 서른의 국면에 덴마크로 떠나는 그녀를 위한 송별회. 오늘에서야 하고 싶었던 인사를 전했다.
“모든 것이 변하고, 모두가 변해갈 때, 그 때 그 눈빛 그대로.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보고 싶었던 ‘아름다움’을 끝까지 지켜줘서 고맙습니다. 그 때, 우리의 꿈이 청년이었듯! 다시 만나는 날에도 ‘청년’으로 남아주세요.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