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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게릴라 Oct 24. 2019

상처 입은 치유자

조용한 오후의 단상

사랑한다는 건,

살갗을 모두 벗겨내는 것과 같은 일이야”

상처 입은 여우가 말했다


“그렇게 아픈 일이야?
그럼, 그냥 사랑하지 않고, 좋아만 하면 안 돼?”

묻는 나의 물음에 여우는 대답했다

“그 건 안 돼,

이미 장미꽃에 네가 길들여진 것처럼,
마음에 깃들여진 존재가 되어버리면

되돌릴 수 없어”


“‘길들여진다’는 건 어떤 거야?”
어린 왕자의 물음에 여우가 대답한다  

‘길들여진다’는 건,

단 하나의 존재가 되는 거라고

길들여진다는 건 어떤 무엇으로도
그 대상을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깃들여지는 것은
장미꽃의 가시마 저도 끌어안아야 하는 일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것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상처와 슬픔까지 모두 끌어안는 일

그래서 살갗을 모두 벗겨내는 것처럼
너무나 아프고 아플 수밖에 없는 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길들여질 수 있는 존재가 될 때

그 상처를 지나온 자리에서
비로소 우리는 다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다

여우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다시 사랑을 낳고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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