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오후의 단상
“사랑한다는 건,
살갗을 모두 벗겨내는 것과 같은 일이야”
상처 입은 여우가 말했다
“그렇게 아픈 일이야?
그럼, 그냥 사랑하지 않고, 좋아만 하면 안 돼?”
묻는 나의 물음에 여우는 대답했다
“그 건 안 돼,
이미 장미꽃에 네가 길들여진 것처럼,
마음에 깃들여진 존재가 되어버리면
되돌릴 수 없어”
“‘길들여진다’는 건 어떤 거야?”
어린 왕자의 물음에 여우가 대답한다
‘길들여진다’는 건,
단 하나의 존재가 되는 거라고
길들여진다는 건 어떤 무엇으로도
그 대상을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깃들여지는 것은
장미꽃의 가시마 저도 끌어안아야 하는 일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것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상처와 슬픔까지 모두 끌어안는 일
그래서 살갗을 모두 벗겨내는 것처럼
너무나 아프고 아플 수밖에 없는 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길들여질 수 있는 존재가 될 때
그 상처를 지나온 자리에서
비로소 우리는 다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다
여우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다시 사랑을 낳고
사람을 자라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