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기
계기는, 기억 더미에서 꺼낸 어느 해외 SNS 글.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나 지금 카페 왔는데, 사이코패스 본 거 같아. 혼자 온 사람인데, 휴대폰을 안 봐. 책도 없어.
커피만 마시고 있어. 창 밖을 보면서."
나도 그런가, 너도 그런가 등등, 그저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이었다. SNS 중독, 도파민 중독, 카페인 중독. 일만 빼고 뭐 하나 놓치는 것 없이 골고루 챙기는 내 일상. 나만의 즐거움이면 충분한 이 취미 생활을 누군가 난데없이 FOMO(fear of missing out)라고 정의했다. '뭐지? 어감이 이상한데?' 낭패다. 상대방이 웃으면서 말하면 대응하기가 애매해진다. 무슨 뜻이냐 되물었어야 하는 타이밍을 놓쳤다. 대신 눈의 초점을 흩뜨리며, ‘아, 그런가요?’ 하고 말았지만,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후 뜻을 찾아 읽을수록 전문가 설명을 들을수록 그의 정의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내내 지나간 일에 골몰하고 나서야, 결국은 다음번에 만나면 내게 ‘FOMO’가 없음을 증명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증명을 위해서는 실험이 필요했다.
일시: 일요일. 아침 7시 30분.
장소: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준비물: 개인컵, 신용카드 한 장.
주의사항: 반드시 혼자 갈 것.
매장에는 벌써 네 팀 정도가 있었고, 디카페인 무지방 라떼 한 잔을 받아 들었다. 오가는 사람이 확실하게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뒤늦은 고백을 하자면, 이른 일정을 챙겨야 했기에, 홀로 머문 시간은 고작 30분 남짓.
일단 손이 허전하기는 했다. 대신 잡고 있는 머그컵의 따뜻한 온기가 용기를 주었다. 겨울이면 여지없이 ‘으, 차가워!’를 내뱉게 하던 휴대폰이 아님이 실감 났다. 두어 모금 마시니 위장도 따뜻해졌다. 능동적으로 주변을 면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영하 3도에는 맨발에 슬리퍼 정도가 적당하고, 삼거리 녹색 보행 신호는 세 명에 한 번씩 무력화되었다. 산책이 너무나 신나는 강아지와 가진 체력 전부를 쏟아 내는 견주가 지나갔다. 차를 타고 와서는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이곳은 DT가 없다)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눈만 빠끔히 보이는 완전 무장으로 걸어와서는 양손에 테이크아웃 트레이로 음료 여섯 잔을 들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매장 문이 열릴 때 들리는 카페 직원의 반가운 인사, 손님의 대답과 작은 웃음소리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카페인 없이도 커피 향은 진했고, 지방이 없어도 라떼는 맛있었다. 이때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릴스 영상과 문구. 'Hey, just breathe...'
FOMO에 숨긴 잘난 척 따위는 금방 잊었다. 굳이 감추며 말한 의도를 내가 알게 뭐람.
오늘 나 사용기의 취지는 SNS중독에 대한 자가진단이었다. 뭐든 결심하기 좋은 1월이 아니던가! FOMO 뜻을 찾아가며 스스로를 북돋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 다만, 이 실험의 시작이 어디선가 본 SNS 글이고, 마지막 생각은 릴스 영상이라는 것은 아이러니겠다. 물리적으로야 아무것도 보지 않았지만, 중독으로 정의되는 그 어떠한 신체적 반응도 겪지 않았지만, 나의 현실세계 대부분에 가상공간이 겹쳐있는 셈이다. ‘검색 기록’과 '열어본 페이지'가 내 세상의 요약 버전이 될지도.
혼자서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데, '사이코패스'가 수식어로 붙고, 찰나였지만 공감하는 기분을 느꼈다니. 물론 안다. 일상에서 오가는 '중독'이라는 표현이 진지한 병리학적 표현이 아님을. 오히려 일정 정도의 걱정, 우려, 자책, 공감도 담겼으리라. 물론 안다. 모두가 그런 '다정함'을 담지는 않았음을. 내게 ‘포모'라는 말을 냅다 던진 그 사람이 그랬듯.
SNS 원글쓴이의 의도는 내가 알 길이 없지만, '사이코패스' 표현이 갖는 '자극'만 노린 것은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