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기
같이 사는 그 두 사람은 늘상 말다툼을 했다.
격렬한 싸움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모든 일상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려 했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무우우우지 한가해서 그런 것 같았다.
고민하던 것이 줄어들어서 또는 사라져서, 허전해서, 그 자리에 무엇이라도 집어넣고 관심을 쏟고 싶기 때문이리라 여겼다.
각자에게 취미든, 소일거리든 새로운 것이 생기면 덜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일거리에 더욱 가열하게 참견을 해댔다!
안타까움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두 사람의 절절한 사연에 귀를 기울였다.
각자의 이야기를 따로 들어보기도 하고, 함께도 들어 보았다.
당연하게도 나의 성의는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다.
심리학자도 상담사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듣는 것이었다.
"식사를 12시에 하기로 약속을 했으면서, 왜 1시 반이 넘어서 먹었는가?"
"내가 집 청소를 했잖아. 그러다 늦을 수도 있는 거지!"
"몸이 그렇게 힘들다면서! 누가 청소를 하래? 아님, 식사를 하고 청소를 하면 되잖아?"
"일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이건 대화일까? '대화'의 정의는 무엇인가. 단순히 말을 주고받음만 지칭한다면, 이 둘이 하는 것은 대화이다. 하지만 말의 오고 감은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을 위함일 텐데, 이 둘의 '의사'는 무엇일까? 그런데, 본인들은 자신의 '의사'를 알고 있을까? 저 대화 속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꼭 그런 게 있어야 하느냐고 되묻지는 말아 달라. 따지고 보면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에 의지나 목적이 없는 경우는 없다. 하다못해 '그저 습관'과 같은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테니. 일단 '목적'을 알아야 이 대화를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물었다.
"왜냐니? 별 것도 아닌 걸로 따지잖아!"
"왜 별 것이 아니야? 분명 또 아파서 쩔쩔맬 거잖아!"
아하! 걱정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겠다.
"당신은 식사를 시간 맞춰 잘해야 합니다. 당신은 쉽게 지치는 사람임을 내가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이 행여 몸이 아플까 봐 나는 많이 걱정이 됩니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집 청소를 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힘이 넘칩니다. 이런 모습을 봐주세요. 자, 대단하지 않습니까? 나를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아직 충분히 건강하며 당신 곁에 오래오래 있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에게 나의 '해석'을 들려주었다.
"아, 됐어."
나는 씨이익 웃어 보였고, 칠순의 부모님은 내 눈을 피했다.
분명 정답일 것이다. 이어진 두 사람의 대화 톤이 한결 낮아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