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기
오늘 제목은 싫음에 대한 고찰로 정했다. 싫은 것을 적어보자. 오늘, 월요일 아침, 체중계 숫자, 또는 이 세 개의 조합? 싫음 그 자체지. 무엇보다 지난 주말 저녁을 후회와 자책으로 바꿔버리므로.
금요일 퇴근길 다리는 유난히 빨강으로 가득했다. 브레이크 등 주제에 얼마나 깜빡깜빡 까아암빡대는지. 나처럼 포기하면 본래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 텐데. 어차피 들어선 다리에서 유턴은 없다고. 앞 차 뒷유리에 부착된 스펀지밥 인형이 까닥까닥 내 말에 동의해 준다. 그때 번뜩, 저녁메뉴가 정해졌다.
나는 동그란 것을 좋아한다. 동그랑 땡을 시작으로 세상에 있는 동그란 것들은 다 맛있다. 피자 햄버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국밥도 동그란 그릇에 나오지 않는가? 네모난 스펀지밥이 오늘 저녁은 피자라고 정해줬다. 폭신폭신, 따뜻한 하얀 치즈 위를 맑고 투명한 오일이 흐르고, 그 위에 한가득 펼쳐진 빨간색 동그란 페퍼로니 햄의 짭조름함. 입안 가득했던, 눈과 입꼬리를 절로 기다랗게 늘려버리는 페퍼톤치노의 알싸함이 만나 뇌를 자극할 때 전신에 퍼지는 충만함. 그리고 이 느낌이 사라지기 전, 피자 도착과 함께 시간 맞춰 준비한 신라면 사발면 국물을 홀짝. 한 뼘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조금은 식은 밤공기.
과거는 거짓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고작 사흘 만에 그 기억이 싫은 것이 되어야 하다니. 그러지 말자. 꽤나 좋았잖아? 그 힘으로 오늘도 가보는 거니까.
다시 읽고 보는데 문득, 나 지금 좋아하는 것을 적고 있는 것인가? 이런 순박한 낙천꾸러기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