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지우기, 또 쓰기

나 사용기

by 허허로이

연말맞이 나만의 행사로 책장 정리에 돌입했다. 올해는 일찍 시작한 편. 예전 패턴으로 짐작건대 연말보다 조금 일찍 정리를 시작하는 경우 막판 스퍼트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모자란 내 모습을 11월, 12월에 조금은 더 채울 수가 있더란 말이지. 무엇이든 많이 써보자 다짐했던 2025년이었는데 과연 얼마나 충실했을까?


정리의 시작은 일단 찾기부터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현실 직시. 이 방 저 방에 처박아둔 메모장, 포스트잇 묶음들, 종류별 다이어리를 방바당게 차곡차곡 쌓아 보았다. 거의 무릎 높이까지 오다니. 한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도대체 뭘 이렇게 쓰다 말다, 쓰다 말아 버린 걸까. 한 권을 충실히 쓴 것이 없구나. 사실 쓰고 나면, 내 글을 다시 읽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난 브런치 글도 그렇고, 일기는 더 그렇다. 쓰기는 어렵고, 쓰는 양 보다 지운 양이 세 곱절은 많고, 그렇게 어렵게 썼음에도 볼 때마다 고치고만 싶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어느 즈음에는 심장을 꽈악 채우던 글자들이 사라지곤 했으므로.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 버려야 한다는 죄책감이라도 덜어 보고자 하나씩 펼쳐 들었다.


어느새 훌쩍 한 시간이 지났다. 피식거리기도 하고, 입맛을 다시기(음식 평이 유난히 많았던 까닭)고 하고, 도무지 기억에 없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서였나?


재밌는데?

어디선가 들은, 니 얘긴 너만 재밌다는 말처럼, 온통 내 이야기만 있는데 재밌다?! 아직 10월 중반임을 감안해도, 2024년보다는 많이 썼다. 어렵고, 귀찮고, 불편했지만, 한 번만 더 쓰자라는 생각으로 칸칸을 채웠다. 이걸 보겠어? 싶었지만 뭐라도 썼다. 나만 볼 거지만, 지우기도 하면서 썼다. 2025년은 그래도 잘했다 싶다. 채우지 못했던 칸칸은 12월까지 다시 달려보는 거다.


물론, 어려움도 예상된다. 내 쇼핑 알고리즘에 2026년 다이어리와 플래너가 뜨기 시작했으므로. 요즘은 속지가 11월부터 나오던데. 뭐, 장바구니에 담아만 둔다고 내 결심이 흔들리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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