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하나 더

나 사용기

by 허허로이

다시 써보자 마음먹고 보니, 예전을 돌아보게 된다. 과거사 정리 같은 상당한 비장함을 품고.

왜, 무엇이 쓰기를 멈추게 했을까?

그걸 알면! 그것을 향해,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를 외치지는 못해도, '살짝궁' 비켜갈 수는 있겠지?


오류, 무지함, 시간 내기, 허세에 대한 두려움, 자기반성을 깔고 가는 찌질함, 유통기한 지난 약속에 대한 질척임, 드러냄의 부끄러움, 미련함, 그리고 미움. 온통 거무튀튀한 이유들만 적힌다. 저들 말고도 많겠지만 비슷한 톤이겠지. 쓰기를 통해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것들인데, 쓰는 동안 더 가까워진 것들이다. 달리 생각하면, 이것들 덕분에 그나마라도 한두 줄 더 썼겠지 싶다. 뭐라도 써야겠기에 뱉어내듯 써 재끼고, 그렇게 쓰기는 했지만, 결국 다시는 읽지 않게 돼 버렸다. 슬픈, 그런 순환이다. '악'순환이라고까진 부르진 않겠다. 그래도, 쓸 때는 좋았잖아? 그러니까 하나라도 더 썼지.


앞으로의 내 끄적임들은 조금은 밝았으면 좋겠다. 총천연색은 못되어도 채도는 좀 높여봐야겠다. 이미 적힌 것들을 미워하지 않는 마음부터 시작해야지. 미워하면 닮아간다 했고, 지금보다 더 닮은 나를 원치는 않는다. 저것도 나이겠지만, 다른 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다른 나를 찾고, 그게 안 되면 만들기라도 해서 글쓰기에 덧붙이면, 그것 또 그것대로 한 줄 더 쓸 수 있는 거리가 되겠지. 이미 묻은 색을 지우느라 애쓰기는 결국 예전 그 자리에서 종종거리기가 될 테니까. 차라리 다른 것 만들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결국, 브런치 글은 지우지 않기로. '정리'의 의의는 비단 몽땅 버리는 데에 있지는 않을 테니까.


*아직까지는 쇼핑 알고리즘을 잘 피하고 있다. 2026 다이어리는 수중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쓰면 쓸수록 점점 더 다양한, 알록달록 플래너들이 장바구니에 쌓여만 간다. 나, 참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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