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나 사용기
바람이 줄었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 입춘이 지나며 미세먼지 나쁜 날이 많아졌다. 내가 사는 곳은 안개도 짙어졌다. 초록 새순은 내 눈에는 안 보여도 분명 흙 바로 밑까지 왔겠지? 갈색, 검정 흙 부스러기들 사이를 기어코 비집어 내느라 애쓰는 중이리라. 내리쬐는 햇살은 달콤하겠지. 산책길 벤치에서 길고양이를 만났다. 차마 올라앉지는 못한 채, 의자 다리 하나에 몸을 붙이고 미동도 없다. 햇살을 받느라 혹은 내 존재가 무시할 만해서인지. 시선은 게슴츠레 나를 주시하지만 여전히 내가 자신을 보지 못했을 것이란 확률에 기대를 건다. 나도 이에 부응하고자 시선을 앞에만 둔다. 녀석이 나를, 나도 녀석을 방해하지 않기로 함에 우리는 암묵적 합의를 했다. 부디 녀석의 기다림이 따뜻한 봄 햇살로 보상받기를 기원한다. 뭐 하나 챙겨준 적 없지만, 단풍 가득한 일 차선 자전거 길을 따라 걷던 녀석을 기억한다. 그 고양이는 고등어 무늬였으니 아마도 저 노랑이는 아니겠지만, 거리 생활의 고단함이야 다르지 않겠지. 분홍 매화(春先)가 필 때쯤에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가던 길을 계속 걷는다. 매캐한 솔향이 가득한 공간으로 훅 들어섰다. 작년에 또 가지치기를 많이 해서 소나무 위세가 많이 줄었다. 코로나 시기에는 훌쩍 자라서 터널을 이룰 정도였는데. 그래도 향기는 여전하다. 이 길을 걷기로 한 건 자투리 시간에 이렇게 운동이라도 하고 싶어였는데, 이제는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서 걷기를 한다. 어차피 이런 산책으로 운동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목적을 바꾼 지는 한참이다. 물론, 무엇으로 바꿨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걷는 행위가 주는 에너지가 있다. 계절마다 다른 공기, 햇살, 그늘, 같은 길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옷차림, 산책하는 강아지의 옷들, 그리고 그 위로 내려앉는 계절의 냄새들. 이 모든 사소한 변화를 몸에 쐬는 것이야말로 내가 걷는 진짜 이유였음을 이제는 안다. 비록 운동 효과는 미미할지라도, 이 길을 걷는 시간은 내 안의 흙을 고르는 시간이다. 아까 만난 노랑이도, 흙 밑의 새순도, 그리고 나도 각자의 속도로 봄을 기다리고 있다. 목적이 중요하지 않은 일도 있는 법이다. 매캐하지만 알싸한 솔향을 찾아 걷다 보면, 언젠가 우리 모두 따뜻한 볕 아래서 다시 마주할 테니. 걷는 일은, 나에게 가장 정직한 봄 마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