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밖의 사용기
*다음 글은 스포가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기생수는 인간과 비인간이 마주칠 때 가능한 인식과 관점의 차이를 언급하는 반면,
넷플릭스 기생수, 더 그레이는 종교를 활용하고, 주인공의 서사에 무게를 뒀다.
다른 서사란 곧 기생수에 대한 태도가 다름을 의미한다.
원작의 주인공은 기생수의 의식에 동기화되는 갈등을 경험하지만,
한국판의 주인공은 기생수의 행동과 생각을 알지 못하는,
크라임스토리에서 종종 등장하는 이중인격자 설정이다.
기생수는 이름 그대로 혼자서 살 수 없다는 실체적 한계를 갖는다.
살아 있기 위해 인간이라는 몸을, 뇌를 먹어야 한다는 설정.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일방적으로 기생해야 한다면, 이 둘 간의
공생, 공존의 의미가 어떻게 성립하는가? 애니메이션 원작을 볼 때 했던 생각이다.
'공'이 가능하려면, 각자 독자적 생존력이 전제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른 생명의 자리를 꿰찰 것이 아니라.
그래서 감히 골라본 감독의 메시지.
"원하든 원치 않던 너는 혼자가 아니야."
죽음의 문턱에서 주인공을 살린 건 기생수이고,
기생수는 상황에 밀려 주인공의 생을 집어삼키지 못함으로써,
이제 이 둘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지켜야만 한다.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서로를 잡아먹는(dog-eat-dog) 대신,
손을 잡는(hand-in-hand) 선택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