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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허로이 Apr 07. 2024

[읽기] 도파민네이션, 애나 램키

그 밖의 사용기

관련 동영상을 통해 요약본을 여러 번 접했다. 덕분에 잘 읽혔다는 것은 장점이나, 읽는 내내 흥미가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것은 단점이다. 영상 덕분에 책에 손을 뻗기까지의 시간이 현격하게 줄었음이 고무적이지만, 덕분에 늘어난 컨텍스트 딱 그만큼, 책장을 덮기까지 시간이 늘어났다. 어느 순간, 읽고 깨달아 성취를 얻는 횟수가, 요약으로 취하고 버리는 횟수를 압도했다.


"반복적인 쾌락으로 우리의 신경 설정값이 높아지면,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에 절대로 만족하지 않고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바라면서 끝없이 갈등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인간은 궁극적인 추구자다. 쾌락을 좇고 고통을 피하는 세상의 시험에 너무나 잘 대응해 왔다. 그 결과 우리는 이 세상을 결핍의 공간에서 지나치게 풍족한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이 풍요로운 세상에 맞게 진화하지 않았다."
      
출처: 도파민네이션, 애나 램키


그러니까, 나의 뇌가 영상을 입력받아서 깨달음을 날림(?)으로 성취한 횟수가 늘수록, 나의  깨달음 성취의 설정값이 높아졌다. 미션지향형 인간인 나는, 책을 읽어내기까지의 수고로움에 보상으로  주어진 깨달음까지의 과정을, 수고로움과 시간 소모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런 용이함에 맞게 진화하지 못한 나의 뇌는, 쉽게 얻어낸 이야기와 감동들을 아주 빠르게 잊어냈다.


다음 번 읽을 책도 알고리즘으로 소개 받은 것이나, 이번에는 추가 검색을 하지 않았다.

사람과도 그렇지만, 너무 많이 알고(해당 정보의 정확도는 논외) 접했을 때 가장 아쉬운 점은, 자가 발전한 편견에 쉽게 휘둘린다는 점이다. 이게 나이에 서비스로 붙은 라떼경험과 접목했을 경우, 나 스스로든 남이든 그 벽을 허물길이 없다.


떨어지는 흥미를 겨우 붙들고 얻은 깨달음. 여태 믿었던 '도박=도파민=중독'이라는 관계가 틀렸을 수 있음. 즉, 돈을 땄을 때의 흥분에 중독된다고 생각해왔으나(편견), 실제로는 돈을 따기 직전의 그 불확실성에 중독되는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동의가 된다. 돈을 잃든 따든 결과 확인 전까지 치솟는 흥분도가 바로, 이길 수 없음이 자명한 세상의 모든 게임에, 가진 것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자신을 지속적으로 던지게 할 것이다.


어떤 대상을 선택할 것인가는 개인의 숙제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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