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기
헛헛함이 피침 잔뜩 단 장미줄기가 되어 심장을 차르르 감는 느낌이 들 때,
쓴다.
뭐라도 쓴다. 쓰다 보면,
어디가 아픈 지를 쓰게 되기도 하고,
왜 아픈지를 쓰게 되기도 하고.
남에게 뱉고 나서 더 황량해지기보다
카페인을 들이 붇고 낯빛이 더 꺼메졌단 얘기를 듣기보다
어찌어찌, 쓰고 나면,
대충 또 그 시간이 지나간다.
매사 이유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그 시간을 쓰기로 바꿔본다.
빈 화면에 따박따박 생겨나는 글자들은 안정감을 준다.
높낮이 없는 따각따각 소리에서 편안함을 얻는다.
그런데 왜 내 백스페이스 키 소리는 유난히 큰 건가?
엔터키 소리보다 크다.
아무래도 되돌아가기는 자판에서조차 힘든 일인 가 보다.
되짚기 개수가 많을수록 크레센도가 펼쳐진다.
글을 쓰는 계기가 특별날 필요가 없음을 배우고 있다.
쉬고 싶을 때가 끄적임의 계기가 되어도 좋겠다.
그때는 백스페이스가 짧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