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너 싫어 말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너 좋아 말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좋아하는데 안 좋아하는 척을 하고, 싫어하는데 좋아하는 척을 하며 지냈다.
그랬는데,
싫어하는데 덜 싫어하는 척을 하고, 조금 좋아하는데 많이 좋아하는 척을 했다.
이제는,
많이 싫어하지도, 많이 좋아하지도, 별다른 말도 않으며 살고 있다.
변덕쟁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남의 지적이나 비판, 성공한 자의 일대기를 접했다거나, 아침에 눈을 떴는데
'자! 바로 지금이야!’
동기부여 영상이 눈앞에 펼쳐졌다던가 류의 계기는 아니었다.
모난 데 정 맞아가며, 이리저리 툭 툭 툭 튕겨지며 변해왔다.
애초부터 나란 사람이 가진 절리로 인해 유난한 모양이 생긴 것도 맞다.
이 변화에는 일정 정도의 깎임이 동반하기에 애처로운 크기가 되려나 싶겠지만,
그 두들겨 맞음으로 인해 에너지가 생길 때도 있다.
버티는 중에 얻게 되는 이 에너지에는 나름의 포스가 있다.
이거, 꽤 멋있다.
왜, 액션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등에, 또는 삼두에 길게 드리워진 흉터 같은.
평소에 안 보이지만, 무심한 상황에 전부도 아니고 살짝, 일부만 보이는.
무한 신뢰를 쏟게 되는 그런 훈장 같은 상처.
내 것은 짧다. 하나는 아닌데, 좀 얇다.
멋지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늘상 꽁꽁 감추느라 이 상처들은 빛도 별로 본 적이 없고, 그래서 허옇지.
영화 주인공은 개의치 않더라. 그렇다고 자랑도 하지 않지만.
나는 많아서 부끄럽던데.
이제는 조금 드러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