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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허로이 Feb 18. 2024

다정함 한소끔 그것은 스몰토크

나 사용기

출근시간 맞춰 현관문을 나섰는데 앞집 어르신과 마주쳤다.

공동주택 생활이란 게 대개 그렇듯, 가벼운 목례 정도에서 끝나야 했다 원래는.

지난 5년여 내내 우리는 주로 그런 사이었다.

매닉 먼데이 바이브였을까, 너무 일찍부터 회사모드였던 것인가, 갑자기 하이톤이 터졌다.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꾸벅 인사까지.

고개를 드는 순간이 되어서야 머릿속이 끼이익 끼이익 움직였다.

'아, 이건 너무 과한데.' 생각이 느릿느릿 지나가고 있었다.

 장면이 연사처럼 슬로가 걸린 채 흐르고 있었다.

어머님은 종종 부직포 밀대로 공동 복도며 엘리베이터 안까지 청소를 하신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던 모양이다.

눈앞에서 밀대가 잠시 주춤했다.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상체를 세우니 어머님 눈빛에 당황이 떠오르는데,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싶은 과한 눈웃음으로라도 이 장면을 끝내야 했다.

씨이익 하고.

"어.. 그래요, 안녕하세요. 그래요. 많이 받아요"

다행히 어머님이 대답을 해주셨다. 이거 굉장한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그저 아 예, 안녕하세요. 정도를 일 년에 한 번 하는 사이란 말이다.

때마침 열린 엘리베이터를 냉큼 타면서, 나는 또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예~"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

아이고야. 혼잣말이 나온다. 그런데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뭐, 괜찮은데 기분이. 배시시 시시.

이게 시작이었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과자를 사들고 어슬렁거리는 나를 보고

역시, 한 달에 두어 번 마주치고 안녕하세요로 끝나던 사이인 어느 분이,

들고 계시던 허쉬초콜릿찰떡파이 한 박스를 건네주셨다.

"자, 이거."

"예? 갑자기요?"

"그럼 갑자기지. 뭐 이런 걸 일부러 들고 다니다가 주겠어?"

"와,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날씨 영 별로라서 기분이  좀 그랬는데."

"이제 좋아졌어?"

"네~. 엄청 좋아졌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세상에나, 몇 마디를 주고받은 거야? 일 년 치는 되겠는데?


이거 참. 아하하하. 기분이 째지기 시작했다.

종종 해보리라. 답이 없다 한들 뭐 어떤가?  

이제 보니, 예의상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말한 내가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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