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기
출근시간 맞춰 현관문을 나섰는데 앞집 어르신과 마주쳤다.
공동주택 생활이란 게 대개 그렇듯, 가벼운 목례 정도에서 끝나야 했다 원래는.
지난 5년여 내내 우리는 주로 그런 사이었다.
매닉 먼데이 바이브였을까, 너무 일찍부터 회사모드였던 것인가, 갑자기 하이톤이 터졌다.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꾸벅 인사까지.
고개를 드는 순간이 되어서야 머릿속이 끼이익 끼이익 움직였다.
'아, 이건 너무 과한데.' 생각이 느릿느릿 지나가고 있었다.
장면이 연사처럼 슬로가 걸린 채 흐르고 있었다.
어머님은 종종 부직포 밀대로 공동 복도며 엘리베이터 안까지 청소를 하신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던 모양이다.
눈앞에서 밀대가 잠시 주춤했다.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상체를 세우니 어머님 눈빛에 당황이 떠오르는데,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싶은 과한 눈웃음으로라도 이 장면을 끝내야 했다.
씨이익 하고.
"어.. 그래요, 안녕하세요. 그래요. 많이 받아요"
다행히 어머님이 대답을 해주셨다. 이거 굉장한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린 그저 아 예, 안녕하세요. 정도를 일 년에 한 번 하는 사이란 말이다.
때마침 열린 엘리베이터를 냉큼 타면서, 나는 또 말을 했다.
"예, 감사합니다. 예~"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
아이고야. 혼잣말이 나온다. 그런데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뭐, 괜찮은데 기분이. 배시시 시시.
이게 시작이었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과자를 사들고 어슬렁거리는 나를 보고
역시, 한 달에 두어 번 마주치고 안녕하세요로 끝나던 사이인 어느 분이,
들고 계시던 허쉬초콜릿찰떡파이 한 박스를 건네주셨다.
"자, 이거."
"예? 갑자기요?"
"그럼 갑자기지. 뭐 이런 걸 일부러 들고 다니다가 주겠어?"
"와,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날씨 영 별로라서 기분이 좀 그랬는데."
"이제 좋아졌어?"
"네~. 엄청 좋아졌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세상에나, 몇 마디를 주고받은 거야? 일 년 치는 되겠는데?
이거 참. 아하하하. 기분이 째지기 시작했다.
종종 해보리라. 답이 없다 한들 뭐 어떤가?
이제 보니, 예의상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말한 내가 기분이 좋아지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