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기
동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처럼.
이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왜 사느냐고 물으신다면" 처럼.
얼마 전 삶에는 애초에 이유가 없을 거라는 배움을 들었다.
그럼 그것들을 뺀 질문을 무엇일까?
어떻게 사느냐?
동사와 이유를 걷어낸 자리를 목적어로 채운다.
시간을 사느냐.
어떤 시간을 사느냐.
무엇을 위한 시간을 사느냐.
어떻게 해야 그런 시간을 사느냐.
구글링 기준 연간 단위로 가장 많은 검색어가 '시간'이란다.
나도 비슷하구나.
이렇게 쓰다 보니 알 것도 같다.
'넌 커서 뭐 할래?'
이 질문이 부담스러웠던 까닭은 동사를 묻기 때문이었어!
세상 모든 동사를 알 지도, 해 보지도 못했는데, 나의 동사가 무엇인지 어떻게 결정하겠어?
'회사 또 바꿨어?'
아니, 세상 동사가 한 두 개 아닌데, 이것저것 좀 바꿔볼 수도 있지.
역시, 동사는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목적어랑 잘 맞는다. 애쓰지 않아도 온갖 것들이 앞다투어 떠오르거든.
햇살, 바람, 커피, 가족, 친구, 공원, 나무, 새소리...
그들의 웃음.
특히 작은 단위일수록 더욱더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