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기
아주 오랜만에 즐겨찾기 구석에 밀쳐져 있던 페이지를 열었다.
일상 기록이 담긴 블로그였다.
취미 덕질을 검색하다가 만난 개인 블로그.
굳이 나란 존재를 더하지 않아도 충분한 이웃이 등록되어 있었다.
대신 즐겨찾기로 넣고 늘상 들락거렸다.
예쁘고 맛있는 신조어가 가득한 글을 읽으며 배시시 웃어보기도 했다.
젊음만 소화할 수 있는 알록달록한 일기와 이미지 사이사이에
시리고 아린 시가 모난 돌처럼 박혀 있는 블로그였다.
핫플을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시만 대여섯 편을 읽고 나오는 날이 늘었다.
화려한 상품과 캐릭터들 사이사이에
기형도와 박판식의 시에 감응하는 그녀의 섬세함에 감탄했고,
기록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는 그녀의 성실함에 박수를 쳤다.
그즈음 항암일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더 이상 이곳을 열지 않기 시작한 마음이.
올해 처음 방문한 그녀의 블로그에는 여전히 찬란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목이 메여서 얼른 페이지를 닫는다. 내 마음 너무 못났다.
숨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항암은 일과 중의 하나였다.
아침으로 시작해서 잠드는 밤까지 진행되는 일과 중의 하나.
여전히 예쁘고, 바쁘고, 맛있고, 즐겁고, 그러다 때로 견디는 일상.
아주 미묘한 차이라면, 그녀가 옮기는 시가 서너 줄에서 열 줄로 늘은 것 같다는 정도.
나 참으로 못났다.
응원하고 싶다면 이웃추가라도 하면 될 것을
이웃추가를 못하겠다면 더 열심히 방문하면 될 일이다.
즐겨찾기 한 페이지 삭제를 주저하는 대신에 말이다.
도대체 무엇을 겁내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