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밖의 사용기
일요일 이른 아침 걸려오는 전화란, 기다릴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고, 지체할 수 없는 내용이란 대체로 나쁜 소식인 법이다.
(The Invention of Solitude)
4월 마지막 날 폴 오스터의 부고가 떴다. 내게는 폴 오스터의 연관검색어인 이 문장은, 저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직감한 순간에 대한 묘사이다.
글은, 종이 위에 쓰여진 것이나 그 자체로 완벽한 그림이, 영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 문장이다. 살아가면서 저런 기다림을, 다가오는 상실을 바라볼 때마다 저 구절이 생각났으니까. '기다리는' 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방황이 죄스럽고, 그래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희망 없는 슬픔이 찾아들 때, 꼬박꼬박 성실한 그 속도가 원망스러울 때, 저 구절을 생각했고, 꼭 닮은 내 모습이 겹쳐졌다.
자기 취향을 몰라서, 남 따라 하기에 몰두하던 때 만난 산문집. 처음이었지만 유일하게 읽은 작품이 되고 말았다. 이제 내용은 고사하고 마지막까지 읽었나조차 희미하지만, 내 가슴이 여전히 퇴마록, 피마새에 웅장해지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때의 취향 찾기 실패는 필연이었겠다.
그래도 저 문장이 남았다. 언젠가 다시 읽겠다는 다짐으로 애써 챙겨두었던 그의 작품들, 이제는 없다. 다시 시작하기엔 이미 밀려있는 책이 많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내밀고, 그의 부고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이 취향 탓이라 미룬다. 사실은, 조금 슬펐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시간과 조금씩 어긋나는 책들이 있다. 그래서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서 다행이기도 한 그런 책들.
그의 평안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