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 도서관, 멜크 수도원

오스트리아, 멜크수도원

by Quiet Miles

멜크수도원은 홀슈타트에서 출발해 비엔나로 들어가기 전 들른 곳이다.

비엔나에 도착하면 곧바로 렌터카를 반납하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계획이었기에,

중간 지점인 멜크에 들르는 일정을 선택한 것이다.


수도원 안으로는 차가 들어갈 수 없어 공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수도원 아래의 작은 마을은 소박하고 정감 있었다.

그 평온한 마을 위로, 언덕을 장악하듯 서 있는 거대한 바로크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도원의 역사는 108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화려한 모습은 18세기 초에 다시 재건된 것으로, 웅장한 바로크 양식이 특징이다.

운 좋게 영어 투어 시간에 맞춰 입장했고, 그 덕분에 공간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내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남은 공간은 단 하나,

도서관이다.

image.png 멜크수도원 홈피에 있는 사진

안타깝게도 사진이나 영상 촬영은 허용되지 않아, 그 장면은 오롯이 기억으로만 남겨야 했다.

도서관 입구에 들어섰을 때, 잠시 말을 잃었다.

온몸에 잔잔하게 소름이 돋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책장, 벽을 가득 메운 두껍고 단단한 가죽 제본들.

금빛으로 제목이 새겨진 책들이 일정한 톤으로 정렬되어 있었고, 그것들은 책장이라기보다 건축의 일부처럼 보였다.


천장에는 화려한 프레스코화가 펼쳐지고, 나무와 대리석, 금빛 장식이 어우러져 공간 자체가 마치 하나의 작품 같았다.

이 도서관에는 약 10만 권 이상의 책이 소장되어 있고, 그중에는 수도사들이 손으로 직접 옮겨 적은 수천 권의 중세 필사본도 있다 했다. 신학과 철학, 역사, 고문헌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여러 언어로 보존되어 있다. 한쪽에 있던 오래된 지구본도 예사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책들이 단순히 전시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지금도 수도사들은 필요하면 이 책들을 펼쳐본다고 했다.

수백 년의 시간을 견딘 책들이 여전히 ‘읽히는 존재’로 남아 있다는 것.


가죽으로 단단히 제본된 덕분에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는 설명을 들으니, 묘한 경외심이 들었다.

한동안 그 공간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고, 지식이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손으로 옮겨 적은 필사본들을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수백 년을 견뎌온 가죽 제본의 책들 앞에서,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토록 오랜 시간 역사와 지식, 그리고 예술이 과연 다른 형태로 완전히 대체될 수 있을까.

수백 년 뒤에도 누군가가 이런 유산을 소중히 다뤄줄까?


잠시 경유하기로 했던 곳이었지만 여행의 한가운데서 숨을 고르게 해 준 시간이었다.

수도원 옥상에서 내려다본 다뉴브강의 잔잔함이 내게 들어와 차분함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우리는 비엔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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