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하나, 막내 고모
"이번엔 컨디션이 좋지 않네. 우리 다음에 보자."
가을에 찾아뵈려 연락드렸는데 그러지 못한 채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 일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고민하지 말걸. 그냥 다녀올걸.
미국에 와서도 언니와 엄마에게 몇 번이나 말했다.
한 번쯤은 뵈러 가는 게 좋겠다고.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 이후로 고모의 상황은 더 나빠졌고,
가족과 친지들은 다시 인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다음 해 봄, 오스트리아 여행 중 비엔나에 도착한 날.
막내 고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간경화가 간암으로 진행되었단다.
수술도, 항암도 잘 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타지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성당에서 작은 촛불하나를 켜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비엔나를 떠올리면 늘 고모가 함께 떠오른다.
잠시 머물러 가셨던 것처럼.
영광집에서 고모를 뵙고 서울로 올라오던 길.
그날 고모에게 받은 문자 메시지.
살아 있다는 것은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라는 말씀이
마치 곧 떠날 사람의 예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지금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몇 년 세월들이 압축된 느낌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저 하늘 구름 속으로
너울너울 춤추며 숨어 버린 느낌.
바로 발바닥에 느껴진 보송보송함만이
현실인가 보다.
그냥 이대로 이 거실에 있고 싶다.
산다는 것은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거.
잘 가거라."
여전히 애잔하다.
소녀 같고, 아티스트 같고,
언제나 푸근하고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나의 막내 고모.
정성스레 내린 보이차를 고모가 젤 좋아하는 찻잔에 담아주시던 그 모습이
아른거린다.
이번엔 제가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