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세비야
스페인에서의 여행이 끝나갈 무렵,
지나온 도시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만일 다시 스페인에 오게 된다면.
그리고 어딘가 한 도시에 정착하듯 머물며
한 달을 살아본다면 나는 어디를 선택하게 될까.
마드리드, 세고비아, 톨레도, 세비야, 코르도바, 론다, 말라가, 그라나다, 바르셀로나.
각 도시마다 분명한 개성이 있었다.
어떤 곳은 압도적인 풍경이 있었고,
어떤 곳은 역사적인 깊이가 있었으며,
어떤 곳은 휴양지 같은 여유가 느껴졌다.
하지만 한 달을 살게 된다면,
내 선택은 아마 세비야일 것이다.
세비야에는 묘하게도 ‘대학 도시’ 같은 공기가 흐른다.
관광객으로 가득한 도시이면서도
어딘가 노트북 하나 들고 카페에 앉아 일을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
세비야 강변 트레일을 따라 조깅을 하는 일상,
로컬 마켓에서 장을 봐 간단한 요리를 하는 일상,
저녁이 되어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에스파냐 광장 근처를 산책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
그런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가끔은 작은 극장에서 플라멩코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타파스 바에 들러
와인이나 샹그리아 한 잔을 마시는 밤.
도시는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 달쯤 머문다 해도 쉽게 지루해질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 어디로든 기차로 이동하기가 좋아
차가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은 도시였다.
세비야에서 지낸 2박 3일 동안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세비야가 이렇게 여유로운 도시라는 인상을 주기 전,
난 먼저 세비야 대성당의 규모에 압도당해 멘탈이 탈탈 털렸다.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고딕 성당이라는 말을
여행책으로 접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 보니
그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천장,
미로처럼 이어지는 예배당들,
그리고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를 만큼 많은 예술 작품들.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마치 거대한 박물관을 하루 종일 보고 나온 것처럼
머릿속이 과포화 상태가 되어
완전히 기진맥진해 있었다.
같이 여행 간 친구 중 한 명이
"이걸 다 공부해야 할 것 같은 자세로 보고 있어. 이제 그만 가자." 라며 웃었던 장면도 떠오른다.
세비야에서는 이상하게도 무엇을 먹어도 맛있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지인에게 강력 추천을 받은
알폰소 호텔 브런치를 미리 예약해 두었는데
마치 스페인 음식의 모든 것을 한 곳에 모아 놓은 듯한 작은 ‘샘플러’ 같은 뷔페였다.
보통 뷔페는 종류는 많아도
막상 먹을 것은 없는 곳이라는 편견이 강한데
식전주로 나온 샴페인부터 모든 음식이 너무 신선하고 고급졌다.
소화력이 크지 않은 나의 위장이
진심으로 안타깝게 느껴졌다.
둘째 날에는 우연히 발견한 레바니즈 레스토랑에서
처음 접한 레바논 음식이 놀랄 만큼 훌륭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한국 관광객들에게 배웠다며
”여기, 존맛탱!”을 외치던 츄로스 가게 아저씨도
지금까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세비야는 다음엔
여행지보다 잠깐 살아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