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무진기행>
도망치는 나, 우리.
무진기행은 간단히 말해 무진으로 여행을 떠난 남자가 여행지의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서울로부터 아내에게서 온 전보에 무진을 뒤로한 채 서울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의 좋은 이유는 희중이 결국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희중은 도시의 생활에 지쳐 과거와 그대로 닮은 무진을 찾아오지만, 무진은 그에게 현재가 될 수 없는 곳입니다. 인숙과의 하룻밤은 과거의 희중을 현재로 불러올만큼 그의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았지만 여전히 그것은 그에게 과거의 시간일뿐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라도 손에 잡히는 순간, 현재가 되는 그 순간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희중이 알아서 였을까요?
결국 그는 비겁한 사람입니다. 마음 한 구석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공허감을 그는 대면하지 않습니다. 그저 한 바탕 꿈만 꾼 것으로 여기고 여전히 괴로워하는 것이지요.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길. 그는 무진을 떠나는 표지판을 보며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맙니다.
이 지리멸렬함, 어찌할 수 없음. 김승옥은 무진기행을 통해 말 그대로 세상에 그냥 던져버려진 우리의 처지를 그대로 그려냅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 부끄러움이 좋습니다. 비록 올바르거나 진취적이진 않지만 주인공의 선택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희중뿐만 아니라 우리는 한없이 어찌할 바 모르는 인간이며, 결국 한발짝도 떼지 못하고 문 앞에서 주저앉아 버리는 비겁한 천성에 익숙함을 느낍니다.
나 역시 언젠가의 희중이었습니다. 위태롭고 나약한 선택들을 하며, 빈번한 공허감을 느껴왔습니다. 소설을 보며 나는 나를 봅니다. 나의 불안과 공포가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되고 그럼에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스스로를 보며 알 수 없는 종류의 위로가 다가왔습니다.
하나도 괜찮지 않은 내 있는 모습 그대로가 괜찮다고 말하는 어떤 위로들에 숨막힘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생경한 위로가 마음 속 공허감을 메워줄 수는 없지만, 그 공간의 온도만은 조금 더 미지근하게 데워줄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승의 것이 아닌 듯 아름다운 문장은 덤이라는 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