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notitl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퀼티 Mar 15. 2017

지나친 농담 마세요

A의 죽음을 기리며

A와는 자주 자살을 모의하던 사이였다. 고등학교 시절 수업이 끝나면 조그만 동아리 부실에서 어떻게 죽는 게 좋을지 자꾸만 이야기했다. 때로는 A가, 때로는 내가 자살에 흥미가 떨어질 때가 있었지만 무슨 조화인지 어느 때에도 둘 중 한 사람은 꼭 죽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세운 자살 계획들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자살을 통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둘이 남기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 다르다는 데 있었다. 나는 내 죽음을 통해 인류에게 생의 존귀함을 선물로 주고자 하였고, A는 죽음으로 생의 부질없음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 그러므로 자살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이르러서는 우리 둘 사이에 도저히 합의될 수 없는 커다란 강이 있었던 것이다. 우스운 일이었다. 결국 나는 A와는 동지로써 영원할 수 없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A는 거대한 탑을 그리기를 좋아했다. 회백색 도시에 우두커니 서 있는 총 천연색 탑. A의 그림은 언제나 형편없었지만 A가 그린 탑에는 어떤 결기 같은 것이 늘 깃들여 있었다. 내가 언젠가 A에게 탑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A는 뛸 듯이 기뻐했다. 내게서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A는 자기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탑이 외로워 보인다느니, 위태로워 보인다느니 하는 말을 할 때마다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서 A는 자기는 탑을 그린 게 아니고, 그 탑 위에서 곧 떨어질 무언가를 그린 것이라며 노란색 물감으로 뭉개버린 첨탑의 꼭대기를 가리켰다. W야. 나는 정말이지 탑 안에 숨겨져 있는 게 궁금해. 왜 이리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을까? 그리고서 A는 금방 그린 자신의 그림에 얼굴을 갖다 대었다. A는 눈 앞에 탑을 두고 이리저리 그림을 돌려대었다. 이 정도로 궁금해. 콧등에 노란 물감을 잔뜩 묻히고 나를 향해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그때 생이 그대로 멈추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는 죽음을 미룰 수 없다고, A와는 함께 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그 해의 일 년이 시작되는 날. 나는 B를 사랑하기로 정했다. B와 나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 명백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걸맞은 일이었다. B는 그늘 한 점 없었고, 지나치게 아름다웠으며, B의 세계는 인류보다 오래된 별들이 뛰어노는 별천지같이 밝았다. B로 인해 앞서 살아온 수년간의 노랗고 거멓던 생보다 훨씬 많은 색이 세상에 비추어지고 있음을 발견했고, 그로 인해 나는 자주 놀라워했다. 그것들을 발견하는 건 아주 흡족스러운 일이기도 하였지만 B로 비추어 드리워진 나의 그림자는 아주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 역시 밝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잠든 B의 얼굴을 보다가, 가느다랗고 길게 쌍꺼풀 진 B의 눈매가 열리는 순간, 나의 모든 운명이 이미 B에게 걸려있음을 확신했다. 그런 기분이 드는 순간 나는 완전한 절박함을 느꼈다. 그리고 죽음을 결심했다. B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그대의 존재만으로 나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가득하여 오롯이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택한 방법은 아주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호수에 빠져 죽을 생각을 했다. 바다는 너무 거대해서 무서웠다. 떠나기 전에 A에게 전화했다. 나는 방법을 찾았다. 함께 할 수는 없다. 결심이 섰다. 그러자 A는 담담한 목소리로 나를 배웅한다고 하였다. 서울의 북쪽을 방향으로 한 지하철 역에서부터 A와 나는 단 한 마디도 없이 목적지를 향해 갔다. 서로에게 이미 떠들썩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A의 태도가 내게는 아주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경기도 북쪽의 어느 댐인지 호수인지 저수지인지에 이르렀다. 맑고 경치가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물에 빠져 죽는 것이야 어렵지 않은 일인데, 도무지 죽기 전에 앞으로 살아남을 사람에게 무슨 인사를 해야 좋을지를 모르겠던 것이다. 그래서 우물쭈물거리고 있는데 A가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있지, W야. 나 비밀 있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무엇이냐고 묻자 A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댐인지 호수인지 저수지인지로 뛰어들었다. 모든게 장난같았다. 나는 그저 황망하게 뛰어내리는 A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A는 그대로 가라앉아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단 5분. 난 5분만 떨어진 A를 보다가 그대로 겁에 질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을 덜덜 떨면서. 싸구려 코미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었다. A가 무얼 진정으로 원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A의 죽음으로 나의 모든 결심과 계획들은 한낱 수준 낮은 패러디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A로부터 뜻하지 않게 삶이라는 상품을 되돌려 받기는 받았는데, 그게 이미 내가 반품한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갑작스러운 행운에 나는 여간 겸연쩍고 당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결국 방황하다 나는 B에게로 돌아갔다. 나를 본 B는 너무 놀랐다며, 대체 무슨 일이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며 편지는 농담이었다고 대답했다. B는 너무 지나쳤다고 나를 책망했다. 눈물이 가득 고인 가녀린 눈을 보니 나는 온몸이 무너지듯 아팠다. B의 떨리는 어깨를 다독이고 소매춤으로 벌겋게 변해버린 B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는데, B는 나에 대한 원망이 언제 있었냐는 듯, 생기로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다행이라고 나직하게 코를 훌쩍였다. 그 순간 나는 아주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운명이 A를 신으로 하는 어떤 제단에 저당 잡혔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A에게 연민을 가득 담아 영원한 저주를 걸고 있다는 사실을 선언한다. 인간이란 실로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여서, 자신의 손으로 죽음을 선택할 강한 권능을, 스스로를 파멸시킬 자유를 영구히 원하며, 그 때문에 나는 자살로써 단 하나의 신이 될 기회를 맞이하고자 하였으나, 내 하나뿐인 갈망을 한낱 지나친 농담으로 만들어버린 A를 뿌리 깊게 증오하고 또 증오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슬프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총천연색 탑 안에 갇혀 온전한 평온과 자애의 마음으로 가득한 내 신세에 참을 수 없는 비애감을 느끼는 것 뿐임을 최종적으로 고하는 바이다.


.

.

.


그리하여 W는 운명을 순전하게 살아갔다.


그리고 그가 권태롭게 죽으며 남긴 편지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학생처럼 산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