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항상 가운데 끼는 사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항상 내가 조율하고 있다

by 조직을 읽는 여자

조직에는 늘 가운데 끼는 사람이 있다.
위에서는 내려오는 지시를 이해해야 하고,
아래에서는 그 지시가 왜 이렇게 나왔는지 설명해야 하는 사람.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항상 중간에서 말을 고르고, 톤을 낮추고, 상황을 무마한다.


공공기관에서는 이 역할이 유독 또렷하다.
정책은 위에서 정해지고,
현장은 아래에서 움직인다.


그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고,
그 간극을 메우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바로, 늘 가운데 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회의에서 가장 늦게 말한다.
먼저 말하면 위를 거스르는 것 같고,
너무 늦게 말하면 현장을 외면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상황을 다 보고 나서
가장 무난한 문장을 고른다.
“취지는 이해합니다만,
현장에서는 이런 부분이 조금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위는 체면을 지키고,
아래는 숨을 돌린다.
그리고 그날도 회의는 무사히 끝난다.


문제는, 이런 역할이 공식적인 직무가 아니라는 점이다.
‘조율’은 업무 목록에 없고,
‘중간에서 버텨줌’은 성과 지표에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역할이 없으면 조직은 쉽게 삐걱거린다.


공공기관의 특성상
이 가운데 역할은 더 자주, 더 오래 지속된다.
잦은 순환보직으로 인해
누군가는 정책도 알고, 현장도 아는 사람이 되는데,
그 사람이 바로 ‘가운데 끼는 사람’이 된다.


이 사람은 위로부터는
“너니까 믿고 맡긴다”는 말을 듣고,
아래로부터는
“그래도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듣는다.


칭찬은 양쪽에서 오지만,
보상은 어느 쪽에서도 오지 않는다.
가운데 끼는 사람의 어려움은
일이 많아서가 아니다.
항상 감정의 완충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불만을 위로 올릴 때는 날을 무디게 만들어야 하고,
지시를 아래로 내릴 때는 온도를 낮춰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처음에는 이 역할이 능력처럼 느껴진다.
“나는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구나.”
“조직을 이해하는 사람이구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이 역할은 성장보다는 소모에 가깝다는 것을.


가운데 끼는 사람은
위로는 강해 보이고,
아래로는 괜찮아 보인다.
그래서 아무도 이 사람이 지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


그리고 어느 날, 이 사람이 말수가 줄어든다.
회의에서는 고개만 끄덕이고,
조율 대신 전달만 한다.
그때 조직은 말한다.
“요즘 왜 이렇게 소극적이지?”
하지만 그건 소극적인 게 아니라,
더 이상 완충할 여력이 없다는 신호다.


가운데 끼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소통 스킬이 아니다.
자신이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이다.


이 역할을 선택한 것인지,
떠밀려 온 것인지.
그리고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조직 역시 질문해야 한다.
이 사람의 조율이 없으면
과연 이 시스템은 작동할 수 있는가.


가운데 끼는 사람은
조직을 유지시키는 힘이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장 쉽게 소진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빠진 뒤에야
조직은 깨닫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균열이
한 사람의 말과 표정 위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지를.



다음 글에서는 "조직에서 조용히 버티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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