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사람이 가장 먼저 소모되는 이유
어느 조직에나 ‘에이스’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보고서를 맡기면 기준 이상으로 돌아오고,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제가 해볼게요”라는 말을 먼저 꺼내는 사람.
일이 꼬였을 때 마지막으로 기대게 되는 사람.
공공기관이라고 다르지 않다.
오히려 공공기관일수록 에이스는 더 또렷하다.
정해진 규정, 제한된 인력, 잦은 대외 요구 속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판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이스는 조직에 꼭 필요하다.
문제는, 에이스가 ‘역할’이 아니라 ‘상태’가 되어버릴 때 시작된다.
공공기관에서 에이스는 대개 비슷한 경로를 밟는다.
처음에는 ‘일 잘하는 직원’이다.
그 다음엔 ‘맡기면 되는 사람’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된다.
이 단계가 문제다.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의 업무는 더 이상 조정 대상이 아니다.
대신 기준이 된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예전에 이 업무도 잘 해주셨잖아요.”
“이건 경험 있는 분이 하셔야 해서요.”
이 말들은 칭찬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업무 범위를 넓히는 가장 부드러운 방식이다.
공공기관의 구조는 원래 개인의 능력에 기대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직무는 분장되어 있고, 책임은 직위에 따라 나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설계가 자주 무너진다.
그리고 그 틈을 메우는 사람이 항상 에이스다.
문제는 이 과정이 공식적인 평가나 보상과 거의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이스는 일을 더 하지만,
성과는 조직 전체의 이름으로 남는다.
야근은 개인의 헌신이 되고,
성과는 팀의 실적이 된다.
그래서 에이스는 점점 이상한 위치에 놓인다.
업무량은 늘어나는데 권한은 그대로고,
기대치는 올라가는데 설명할 말은 줄어든다.
불만을 말하면 “에이스답지 않다”는 시선을 받고,
조용히 있으면 괜찮은 줄 안다.
이때 많은 에이스들이 스스로를 의심한다.
“내가 예민한 걸까?”
“다들 이렇게 버티는 걸까?”
하지만 사실 이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구조의 반복된 선택이다.
조직은 의도적으로 에이스를 소모하지 않는다.
다만, 가장 덜 문제를 일으키는 선택을 계속할 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늘 같은 사람에게 쌓인다.
공공기관에서 이 현상이 더 오래 지속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잦은 이동과 순환보직,
장기적 전문성보다 ‘즉시 투입 가능한 사람’을 선호하는 문화 속에서
에이스는 늘 안전한 카드다.
하지만 안전한 카드일수록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카드에는 수명이 있다.
에이스의 함정은
‘능력 있음’이 아니라
‘거절하지 않음’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에이스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책임감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를
명확히 말할 수 있는 언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에이스를 붙잡고 싶다면,
그 사람의 헌신이 아니라
그 사람이 빠졌을 때 생길 공백을 먼저 계산해야 한다.
에이스는 조직의 자산이지만,
관리되지 않으면 가장 먼저 닳아버리는 자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소진은 늘 조용히 일어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니까.
늘 해내왔으니까.
아무 말도 안 했으니까.
하지만 조직을 오래 겪은 사람이라면 안다.
에이스가 떠난 자리는
언제나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다음 글에서는 " 조직 내에서 항상 가운데에
끼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