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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자A Nov 07. 2021

사교육 키즈의 방황

공ㆍ사(교육)가 다 망했다



공교육이 무너졌다고들 한다.

이미 학원에서 몇년치 진도를 앞서나간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을 무시하고 교권 추락도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학교의 폐쇄적인 환경 탓에 평교사들이 분위기를 바꾸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은 학원이 ‘정’, 학교가 ‘부’인 삶을 살아간다.


학교에서는 쪽잠을 자거나 학원 숙제를 하고 방과후부터 과외를 받으러, 학원에 출석하러

그제서야 깨어나 움직인다.


사교육계도 녹록치는 않다.

애초에 ‘스승’이 아닌 교육 서비스업 제공자인지라

언제든 대체가능한 소모품 취급을 받는 것도 익숙하다.


자녀를 맡기며 “숙제 많이 내주세요, 많이 혼내주세요.”라고 말하던 것은 80년대생들 부모 세대 때나 가능했던 이야기다.

요즘 사교육 강사들은 철저하게 역량으로 평가받고 가차없이 교체된다.

유명 강사들은 보호자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모쪼록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듣는데,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 멘탈관리 등 전체적인 멘토링까지 학원 강사의 몫이 된지 옛날이다.


서울 지역 웬만한 중3학생이면 수능 독해 문제를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고등학교 재학하는 3년이 문제풀이를 다지는 시간 밖에는 안된다는 거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쓸모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왜 공부를 할까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한국 학생들은 왜 공부를 할까

우선 엄마가 시키기 때문이다.

교육열의 중심지 강남에서는 “시험만 잘치면 원하는거 다 해줄게”라는 호소가 넘치고

혀를 내두를만한 형형색색의 소원들이 펼쳐진다.


그 중 충격적인 것은 “나 시험 잘치면 일단 엄마 골프채로 두 대만 때릴게”였다.

전해들은 말이지만 거기에 대고 어머니는 알았으니 시험을 잘치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엄마들이 미움을 받아가면서까지 교육에 집착하는 이유는

대학의 간판이 취업의 열쇠가 되고

어떤 회사를 낚아채느냐에 따라 인생 전반이 달라져버리기 때문일것이다.


패자부활전은 없다시피하다.

언론계의 예를 보면, 미국만 해도 지역 소규모 신문사들도 굵직한 탐사보도나 특종을 내서 전국지가 인용해가기도 하고

그런 곳에서 경험을 쌓은 기자들이 메이저 언론사로 이직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은 다르다.

무슨무슨 일보, 몇대 일간지의 공채로 합격하지 못하면

영원히 급 안되는 신문의 이름 없는 기자로 남는다.

취재하고 싶은 것을 취재할 자원도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인생을 미리 살아본 엄마들은 자녀들에게 그 기회를 사주고 싶은 것이다.




분명 이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어떻게든 동점자없이 줄세우기 위해 내신 문제를 까다롭게 선별하고

학원과 아이들은 힘을 합쳐서 어떻게든 이를 방어한다.


수학능력시험 하루에 인생이 바뀌는 것은 심하다며

수시지원제도를 만들었지만

이는 학생의 하루하루를 수능날처럼 중대하고 심대하고 실수하면 안되는 날로 바꾸어버렸다.


학생들은 생활기록부에 실릴 내용을 인질잡혀 부당한 일이 생겨도 교사의 눈치를 보고

치열한 스케줄 사이사이에 생기부에 실을만한 경력을 쌓아간다.


모든 세대가 다 자기때가 최악이었다고 하지만

지금 영어유치원, 사립초등학교를 거쳐 대입을 준비하는 사교육 키즈들의 삶은 유난히 고달프다.


일단 이들은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세상은 공부=성공=돈 이라고한다

그렇다면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유튜버, 아이돌, 배달기사가 되는건 어떠냐고 반문하는 학생도 있다.


대학이 진리의 전당이라는 것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린다.

공부하는 즐거움, 알아가는 즐거움, 발전하며 느끼는 성취감도 요원하다.


“영어(수학, 국어, 과학, 사회)는 왜 공부해야 해요?”라고 묻는 학생에게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해야할까. 재도전할 기회는 없거든 이라고 말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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