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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자A Jan 21. 2022

코로나가 바꿔놓은 것들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를 접할 때마다 괴물이나 대형 재난에는 공감이 갔지만, 유독 바이러스성 전염병은 진부하고 시시하게 느꼈다. 인간이 쌓아올린 마천루가 그깟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 무너진다는 것이 현실감없게 다가왔다. 인간의 역사는 병마를 정복해온 역사이기도 하니까, 어떤 역병이 창궐하든 누군가가 신약을 내놓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코로나 초기에는 해외여행 준비에 한창이었다. 사스처럼 누군가 소수는 죽더라도 결국 몇달이면 진정될 국면이라고 예단했다. 이제는 코로나가 하나의 현상이고 생활에서 제거할수없는 백그라운드가 되었다. 옛날 드라마나 영화를 볼때면 주인공들이 아무도 마스크를 안 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무려 신체접촉을 하고 비말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때 우리는 생경함을 느낀다.



코로나는 내가 세계를 보는 눈 뿐 아니라 이 사회가 나를 판단하는 방식을 폭로했다. <요즘애들>의 작가 앤 헬렌 피터슨이 지적했듯(이 책의 부제이기도 하다) 밀레니얼 세대는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다. 인간의 가치가 떨어진 것도 떨어진거지만 노력만 하면 모든 기회가 공평하게 널려있다는 착시 때문에 현실은 더욱 참담하게 느껴진다.


재택근무의 일상화로 '핵심 인력'이라는 말에 거대한 물음표가 찍혔다. 나는 과연 필수 인력인가. 내가 없어도 톱니바퀴는 시스템대로 돌아가지 않는가. 내가 출근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정상이라면 그동안 나는 왜 출퇴근을 해온걸까. 외계인들이 지구를 들여다보면 웃을거라던 농담이 있다. 인간이란 종족은 아침이면 단체로 일어나서 우르르 이동칸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가서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면 다시 자기 굴로 돌아가는 의미없는 행위를 반복한다고.



개인적으로 나에게 코로나는 방학이었다. 쉼없이 달려왔던 터였고, 이직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울 때 다행히 나만 멈춰있는게 아니라 전세계가 일시정지중이니 천천히 생각하고 차분히 준비해보자는 기회처럼 느껴졌다. 내향적인 인간이라 자발적 자가격리에 가까운 생활을 했고, 남의 결혼식에 안가도 되는 핑계가 생겨 오히려 기쁜 적도 있다. 코로나 이전부터 손소독제를 들고 다니던 인간이라 딱히 불편한점도 없고 오히려 책을 잔뜩 읽은 지난 2년이었다.


그럼에도 재택의 일상화, 여가시간의 변용, 인간관계의 단절, 실내 인테리어에 대한 생애 첫 관심 등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나를 뒤덮었다. 내가 이 정돈데 코로나 블루를 느끼는 외향적인 인간들은 오죽할까. 예정되었던 유학이 백지화된 사람도 있고 예상치못한 만남이나 결별도 따지고 보면 이 전염병 때문일 수 있다. 현실이 크게 흔들릴때 나의 중심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할 시간이 강제로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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