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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자A Feb 16. 2022

남자아이는 다르게 길러진다

일생일대의 연구 기회를 장난으로 날려버리기




식물덕후였던 미국의 대학강사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1873년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공고를 발견한다.

'섬 하나를 통째로 빌려 자연과 동식물을 조사, 분류하며 가르치실 강사 모집'

그게 바로 조던의 꿈이자 이 광고를 낸 하버드대학 교수 루이 아가시의 프로젝트였다.

루이 아가시는 박물학자의 일이 신의 뜻을 헤아리고 전도하는 것이라 믿었다.

동식물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해부해 그 내부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 바로 신이 숨겨놓은 생명의 코드를 푸는 일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예를 들면 어류는 인간의 저열한 버전이라고 그는 믿었다. 골격 면에서 갈비뼈를 닮은 물고기의 가시가 보여주듯 인간은 물고기에서 진화되어 갈라져 나온 흔적을 아직 품고 있다. 아가시의 생각에 따르면 인간은 고등생물이지만 자칫 인간으로서 품격을 상실하면 하등한 생물과 다를바 없이 떨어질 수 있다는걸 보여주는 비늘입힌 경고가 바로 어류다.

하버드 대학에서 먼지날리는 자료만 암송하는 수업에 지쳤던 아가시는 한 독지가가 작은 섬 하나를 기부해 연구센터로 활용하게 해준다는 제안에 뛸듯이 기뻐한다.

허허벌판같은 섬에 목재를 날라 기숙사와 연구실부터 짓고 신문에 공고를 낸 끝에 그는 한 무리의 박물학자들을 맞이한다.

조던도 그 중 한사람이다.




장래가 약속되지 않은 프로젝트에 경력을 걸고 모인 젊은이들이라고 해서 모두 조던처럼 진지하지는 않았다.

열악한 기숙사는 여성과 남성 숙소가 겨우 커튼 하나로 나뉘어 있었고

첫날 밤 일이 터진다.

몇몇 남학생이 장난으로 여학생 침소 쪽으로 이부자리를 던지는 '장난'을 벌인 것이다.


철없다고 하기는 멋적지만 박사를 마친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장난이라고 보아 넘길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가시는 달랐다.

다음날 조식 자리에서 아가시는 이 일에 연루된 여섯명의 남학생 이름을 거론하며 이들이 곧바로 증기선을 타고 뭍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못박았다.

여학생들 중 일부는 '그저 장난이었고 피해입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괜찮다'는 의견까지 내놨지만 아가시의 진지함은 이들의 장난을 용인하지 않았다.

여섯명은 결국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지 24시간도 되지 않아 수치스럽게 돌아갔다.

집에 돌아간 이들중 몇명이나 사건의 진상을 주변에 사실대로 고했을까.

진심으로 반성하기 보다는 대응이 과도했다고 앙심을 품은 이들이 대부분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내가 다녔던 학교 중 한 곳에서는 기숙사 화재로 사람이 죽은 적이 있어서 화재와 관련해서는 학칙이 굉장히 엄격했다.

학기말 어느 날 두 명의 학생이 '장난으로' 화재 경보기를 울렸고 전교생이 대피했다.

학교에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이 두 학생은 퇴학 처분을 받았다.





장난을 칠 상황과 아닌 상황을 구분하는 것. 이 일에 실패하는 것은 대부분 특정한 성별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를 다르게 키운다.

*남자애들은 좀 별나, 그럴 수도 있지, 남자애가 놀다보면 그럴 수 있지

*여자애가 유별나다, 여자애가 선머슴같다, 여자애가 칠칠치 못하게


혈액형 성격같은 별것아닌 메시지도 강화되면 한 인간을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발끈하게 만든다.

소심하다고 알려진 혈액형이라고 날 소심하다고 몰아가는거야? 난 아니거든? 따위의 반응이 그렇다.


온 사회가 남자아이는 그래도 돼, 여자아이는 별나면 안돼를 주입하면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다.

여학생들이 벌인 아무리 어이없는 일을 끌어와도 하루에도 수십 수백건씩 발생하는 기상천외한 사고들에 비하면 댈게 아니다.




신문 지상에 보도되는 철없는 10대 철없는 20대는 90퍼센트 이상이 남성이다.

부모나 조부모를 폭행하고 죽여도 살인마, 악마가 아니라 철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건 남자의 특권이다.

여성에게 폭력성이 덜해서 라는 건 변명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은 자신보다 약한 동물이나 어린이, 장애인, 노인을 남성들만큼 빈번하게 공격하지 않는가?

여성이 모성애를 타고나서?

아니다. 그러면 안된다고 강요받기 때문이다.


여자도 망나니처럼 살자는 게 요지는 아니다.

이제는 특정 성별의 일부 철없는(이제 철없는으로 퉁치기에는 너무 나이드셨다들) 분들이 정신을 차려야 할때가 아닐까.

이런 싸잡힘이 기분나쁘다면 철든 남성들이 그들을 계도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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