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에게 '운'과 '불공평한 사회구조'가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등한시되나
배달의 민족 CEO인 김봉진 대표가 고졸, 지방대 출신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명문대를 다닌 사람들은 고등학교 때 엄청 노력을 많이 했다. 그들과 동일한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것은 역차별이다. 현실을 인정하고 두배로 노력해야 한다."
런던 시장 출신이자 영국 보수당에서 외무부 장관을 지낸 보리스 존슨의 강연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콘플레이크 상자를 세게 흔들수록 어떤 콘플레이크 알갱이는 더 쉽게 맨 위에 도달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위로 떠오르기 쉬운 콘플레이크는 '낭중지추' 즉 타고난 지능이 높아서, 똑똑하고 능력 있어서 사회에서 성공하기 쉬운 사람을 일컫는다.
학벌피라미드 상층부에 있는 대학으로의 진학, 이른바 좋은 직장으로의 취업,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것이 우리의 노력만으로 이뤄낸 결실이라 할 수 있을까.
배달의 민족 애플리케이션만 해도 운때가 잘맞아 굳건한 업계 1위를 점하고 있다. 한국의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과 '이런 서비스 정말 필요했다'는 여론이 그렇다. '배달을 전화로 시키면 되지 굳이 애플리케이션까지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더 많았다면 수많은 스타트업 실패사에 조약돌 하나로 남았을 터다. 또 경쟁 서비스보다 발빠른 론칭과 발넓히기도 한몫했다.
북미 스포츠리그에 1월생 선수가 유독 많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있다. 드래프팅 기준일이 1월 1일인 경우가 많은데, 1월생 선수들이 같은해 12월생보다 1년 가까이 신체발달의 시간이 더 있었다는 점이 그 이유다. 통계적으로 1월생이 같은해 연말 생일인 학생보다 신체적으로도 학습능력면에서도 뛰어나다. 탄생 시점은 본인이 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 프로 스포츠 선수의 인생에서 이것이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운' 역시 크게 고려해봐야 할 요소다.
가정환경 역시 마찬가지다. 생후 2년 안에 양육자가 더 말을 많이 걸어주면 아이의 지능 지수 발달이 촉진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는데, 전 문화권에 걸쳐 빈곤층일수록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학교 교사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는 더욱 심각하다. 같은 수준의 학생이지만 학생이 빈곤층일 경우 더 박한 성적을 주는 경향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피그말리온 효과'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교육자가 칭찬을 하고 긍정적인 강화를 할수록 열의를 보이고 나아질 가능성이 크며, 질책하고 낮은 점수를 주거나 무시하면 공부에 자연히 관심을 거두게 된다.
우리가 피아노 연주에 재능을 타고 났다고 해서(유전자의 영향이든 아니든 이것도 역시 운이다) 모두가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를 부단한 노력으로 이끄는 것은 피아노에 흥미를 붙이게 되는 계기들과 흥미를 잃지 않게 하는 칭찬들이다.
책 '불평등 트라우마'의 저자들은 말한다. 우리는 배우자를 만났을때의 기억을 얘기할 때는 '운'의 작용을 빼놓고 말하지 않는다고. 그날의 기분, 날씨, 우연히 주문한 메뉴, 입에 올린 화제 등등이 서로에게 호감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하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학벌, 취업에 대해 얘기할 때 '운'이 작용했냐고 물으면 발끈하곤 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면접날 우연히 딱 준비했던 질문을 받아서, 우연히 머릿속에 떠오른 재치있는 한마디 때문에, 어쩌다보니 그날 컨디션이 좋아서 좋은 인상을 남겼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물론, 운과 우연이 모든 사람의 인생을 하루하루 180도 이리저리 바꿔놓지는 않는다. 불평등한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약물과 음주, 쇼핑중독에 걸릴 확률이 높고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할 확률 역시 높다. 개인의 운과 노력, 집단의 경향성은 다르다.
다만, 하나의 결과를 놓고 너무 쉽게 "노력 부족"이라고 재단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연구결과들이다. 콘플레이크 상자를 흔들다보면 큰 덩어리는 떠오르겠지만 작은 부스러기는 더욱 파슬파슬하게 부스러져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사회의 불평등이라는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구조가 하는 일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