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로 전락한 트랜스젠더리즘

젠더 고정관념 타파가 답이다

by 기자A



영국의 인플루언서 올리 런던은 지난 18일 자신의 정체성은 ‘한국인’이라며 태극기에 성소수자 상징 무지개 문양을 합성한 사진을 게시했다. 그는 방탄소년단의 지민을 닮겠다는 일념 하에 15만 달러(약 1억 7000만원)을 들여 15번의 성형수술을 감행했다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말고, 스스로 특정 국가의 국민이라는 자각만 있으면 명예 국민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와도 맞닿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를 두고 “태어난 성별과 실제 자각하는 성별에 불일치감을 느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성전환을 고려하거나 선택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 성역할(젠더)이라는 허상을 부순다면 위험천만한 수술과 차별 대신 개인은 있는 그대로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성염색체로 구분된다.

이와 다르게 사회적 성역할 즉, 사회적 여성성과 남성성을 기대받고 수행하는 게 젠더다.

MTF라 불리는 성전환은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안이다.


유명한 트랜스젠더들이 공고히 쌓아온 스테레오 타입은 긴 머리, 커다란 가슴, 잘록한 허리, 메이크업, 치마, 하이힐 등이다.

‘레이디딕’으로 불리는 일부 성소수자들은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았지만 외양을 자신이 원하는 여성성의 모습으로 꾸미고 자신이 여성이라고 자각하는 사람들이다.

현실에서 여성은 머리가 짧건 화장을 하지않건 바지를 입건 여성이다.

결국 트랜스젠더들이 호소하는 성별 불일치감은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여성성/남성성을 수행하고 싶다”는 외침이다.

사회적으로 성별에 따라 강요되는 성역할이 없다면 남자도 충분히 그루밍을 하고 입고 싶은 치마를 입어도 된다. 동성을 좋아하는 것 역시 개인의 자유다.

그런데 굳이 ’이른바 여성’이라는 카테고리에 편입되기 위해 성전환을 선택하는 것은 젠더 신화 탓이다.


트랜스젠더들이 역설하는 신체 불일치감(디스포리아)는 알고보면 흔한 현상이다.

많은 여성들이 뱃살이나 허벅지 군살을 떼어내버리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더 큰 키, 더 근육질인 몸을 원하고 지금 자신의 몸에 불만족하는 것 역시 일종의 불일치감이다.


트랜스젠더리즘이라는 허상에 반대하는 한 학자가 예로 든 것처럼

어떤 비장애인이 자신을 ‘장애인’으로 정체화하고 사지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주장하면서 건강보험으로 사지절단수술 비용을 대달라고 요구한다면, 사지가 없는 장애인에 준하는 복지혜택을 요구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주장을 일축할 것이다.


트랜스 한국인 논란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이 되고싶다고 눈을 가로로 길게 만드는 수술을 하는 행위는 인종차별적이기까지하다.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한국인의 외양을 납작하게 재단해 임의의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닮기 위해 성형수술을 감수하는 행위는

의료계에 의해 부추겨지는 측면이 있다.


여성을 주 타깃으로 한 성형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눈이나 코 성형은 물론 위험하다고 알려진 안면윤곽, 양악수술, 일반인에게 흔하지 않았던 입술필러, 가슴확대수술도 이미 예삿일이다. 더이상 커질 공간이 없는 시장이다.

그래서 의료계의 시선은 트랜스젠더로 옮아간 것으로 보인다.

MTF의 경우, 평생 호르몬제를 투여받아야 한다. 더 여성스러운 굴곡과 외양을 얻기 위해 하는 성형수술은 덤이다.

이외에도 남성에서 여성으로 재정체화한 인간은 뷰티산업과 의류산업 등 각종 코르셋 산업의 새로운 고객이 된다.


의료계는 목숨을 건 수술만 하면 새로운 삶, 원하는 성별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이나 트랜스젠더 남성은 생물학적 여성이나 남성과 다른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이들의 높은 자살율은 이와 무관치 않다.

성별정정을 하고도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부당하게 해고 당하는 등의 차별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고정된 사회적 성 고정관념을 깨뜨려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개인의 막대한 투자와 희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속이는 거대한 신산업이 됐다.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했다가 최근 남성으로 성전환을 택한 미국 배우 엘렌 페이지(엘리엇 페이지)는

수술을 마치고 남성이 된 지금, 남들이 자신을 어엿한 한 인간으로 대해주는 것에 자유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여성의 삶은 늘 대상화될 수 밖에 없고, 특히 여성 배우는 평가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가 겪었을 고충과 지금 느끼는 자유감이 이해가는 대목이다.


만약, 트랜스젠더리즘이 없고 고정된 성역할이 없는 세상이었다면 어떨까.

엘렌 페이지는 자신의 이름과 신체와 성별을 바꾸지 않고도

자신으로 행복하게 살수 있을터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 과정에서 자본의 논리에 현혹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자기만의 삶을 영위할 자유가 있다.

트랜스젠더리즘은 그 자유를 돈으로 살수있다고 현혹하는 거대한 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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