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도 되지 못한 간장종지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번역어의 원문을 보면
평범성은 ‘banality’라는 다소 친숙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한다.
‘banality’는 진부한, 시시할정도로 평범한의 뜻이다.
‘ordinary’, ‘plain’ 등 ‘보통의, 평범한, 흔한’과는 결이 다르다.
이 단어를 차라리 '악의 찌질함', '악의 루저성'이라고했으면 더 잘 전달이 됐을까
한나 아렌트는 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 학살의 실행자 중 한 명이었던 전범 아이히만을 관찰한 후
이런 용어를 만들어냈다. ‘진부할정도로 시시하고 평범한’ 악의 정체.
이런 사유의 바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의 정체성을 뒤늦게 알아차린 한나 아렌트의 성장 과정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본인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어린시절부터 크게 의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어를 사용하고 독일 철학에 심취한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큰 부분이었다.
1,2차 세계대전을 목도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단에 설 수 없게 되면서
한나 아렌트는 파리로, 또 미국으로 망명을 거듭하며 수십년간 무국적 상태로 생활한다.
이 경험을 통해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도 독일인도 아닌 ‘세계시민’으로서 보편적인 제3자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취하게 된다.
한나 아렌트를 오독하면 그가 자칫 아이히만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범죄를 유대인에 대한 범죄라기보다 인류 전체에 대한 범죄라고 보았다.
그의 전쟁범죄를 유대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국한한다면 그의 전범재판은 유대인의 복수를 위한 재판으로 그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아이히만을 비롯한 나치의 범죄는 반인륜적인 범죄로 다루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사고력을 포기한 채 기계속 톱니바퀴처럼 하달된 명령에만 따랐던 부속품 전범들이 대량학살을 가능케 했다.
2021년 한국의 신문지상을 뒤덮는 잔혹 범죄자들은 본인의 ‘시시할 정도로 진부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는 너무나 뻔해서 서로서로 분간도 되지 않는데 스스로를 ‘악마’, ‘악’, ‘마왕’ 등에 빗대는 모습이 퍽 우습다.
조주빈은 판에 박힌 듯한 루저남이다. 학벌 콤플렉스, 키를 비롯한 외모 콤플렉스에 지독히 시달리면서
좋은 사람, 똑똑하고 깨어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포장하려 학보사 기자 활동,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뒤로는 저열한 집단범죄를 죄의식 없이 주도했다.
신상이 공개됐을 때 그는 “악마인 자신을 멈춰줘서 감사하다”는 일본 소년 만화에나 나올법한 대사를 읊었다.
그는 대단한 악의 사명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다.
콤플렉스 덩어리인 한국 남자에게 정보통신기술이 결합된 최악의 사례일 뿐이다.
연예부 기자 출신으로 참기자를 참칭하며 유명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가차없이 폭로한 한 유튜버도 최근 유튜브 활동을 접겠다고 눈물을 보였다.
룸살롱 출입 등이 폭로되자 어쩔 수 없이 꼬리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남의 흠을 지적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봤어야 했는데 자신조차 떳떳치 못했고 운운
뻔한 변명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를 폭로한 지인 역시 얼마나 시시하게 평범한 같은 수준인지 안봐도 넷플릭스다.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해 여성 두명을 살해한 남성
그도 뿔달린 악마가 아니다.
그저 인생의 절반을 교도소에서 보낸
사회와 유리된 자기 과시적인 루저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루저들이 한국 사회의 평균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미성년자 여성이 등장하는 유튜브에 누군가 ‘악플이 달릴까 걱정된다’고만 댓글을 남겨도
그 밑에 ‘메갈이냐’, ‘페미니스트는 꺼져라’ 등의 모욕이 주르르 달린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위는 당연히 보장된 권리임에도
여성단체 ‘해일’의 시위는 매번 남성들의 집요한 불링에 시달렸다.
이들을 키워낸 것은 8할이 유튜브 저질 콘텐츠, 남초 커뮤니티, 이를 받아적는 언론이다.
이제 이들에게 자정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인다.
남성이 여성을 죽이는 것을 ‘데이트 폭력’이라 부르든 ‘교제살인’이라 부르든 혹은 모르는 사이의 관계에서 ‘묻지마 살인’, ‘여성혐오 살인’이라 부르든
한국 여성들의 사망이유 중 ‘한국 남성’이 차지하는 순위는 놀라운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이들은 몇몇 여성혐오적 남성 유튜버(이른바 페미코인을 반페미 추종자들에게서 제일 많이 타가는)의 지령을 하달받은
아이히만의 열화버전에 불과하다.
오늘도 네이버 지식인에는 이런 질문이 올라온다.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화가나 죽이고 싶은데 정상인가요?’
그리고 당신은 정상이라는 그들만의 부둥부둥 대잔치가 시작된다.
IS에 투신한 김군은 차라리 국내에 피해를 덜줬다고 칭찬해줘야 할 지경이다.
전시에나 나올법한 1% 이하의 출산율은
이 상황이 전시에 준하는 남성 경계경보 단계임을 잘 보여준다.
한국 남성들의 여성혐오 범죄(실행했거나 아직 실행하지 않았거나)는 시시할정도로 진부한 평범성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