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업가라고 불리고 싶지 않았다.
“사업하는 거야?”라는 질문이 어색했다.
나는 사업가라고 불리고 싶지 않았다.
그저 AI와 함께, 한 번쯤은 내 것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퇴사의 이유가 이직이 아니라는 말을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였다.
"사업하는 거야?"
그 질문을 들을 때면 어딘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 밖을 나와서 내 것을 한다는 건 결국 사업을 하겠다는 이야기였지만, 뭔가 대단한 것을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진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자기계발서에서 항상 말하는 큰 비전이나 세상을 바꾸겠다는 마음가짐도 없었다. 그저 내가 원했던 것은 아주 작고 단순했다. 그저 작더라도 내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회사에서는 당연하게도 이미 운영 중인 서비스가 당착 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를 분석했다. 새롭게 지표를 설계하고 대시보드를 구축해 인사이트를 발굴하더라도 이미 정해진 서비스의 범위 내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앞선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서비스 방향성에 맞추어 업무가 진행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는 순간들이 많아졌고, 점점 더 수동적으로 변해가는 내 태도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만약 여러 AI와 여러 노코드 툴이 없었다면 내가 퇴사라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디자인과 개발 영역은 여전히 낯설었고,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직접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은 아니게 되었다.
십여 년 전, 흥미가 없던 생명과학 전공 공부는 뒤로한 채 프린터와 관련된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아이디어 하나만 가지고 학교 내 컴퓨터 관련 학과 사람들을 수소문하고, 개발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좌절을 느꼈을 때와는 달랐다. 이제 AI는 나를 전문가로 만들어주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시도는 해볼 수 있는 사람으로는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내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AI의 발전으로 실패해도 감당 가능한 작은 실험을 빠르게 반복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속에서 기회가 보였다.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더라도 수시로 눈치 보지 않고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정확하지 않은 답변을 주더라도 다시금 여러 AI에게 되물어보며 오답률을 낮출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문제를 해결할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서비스를 목표로 두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고, 경험하고, 학습하길 반복했다.
1인 앱 서비스 개발을 위해 나는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가?
그중에 AI에게 어디까지 일을 맡길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내가 혼자서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대답하며 작은 실험들을 반복해 보기로 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반복들은 성공일지 실패일지 모르는 종착지를 향한 여러 계단 중 한 칸에 불과하다. 다만 분명한 건 회사에서보다 나의 하루를 더 주의 깊게 바라보고, 전혀 새로운 영역을 경험하며 안전한 울타리를 허물고 점점 넓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내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AI를 사용해 보고, 헤매고, 레퍼런스를 찾고, 또다시 효율화하기 위해 고민하는 기록들이 점점 쌓이고 있다. 그리고 이 작은 기록들이 회사에서 학습된 무기력 속에 꺾여있던 의욕에 불씨를 지피고 있다.
모든 것을 홀로 책임져보는 삶을 선택했고, 이 선택 덕분에 스스로 부풀려왔던 능력치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제야 내게 정말 필요한 것들의 해상도가 조금씩 또렷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