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아닌, 이유에 대한 공감이 흐려지고 있었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공감할 수 있었을 때,
그 이유는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유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성과가 없었던 것도, 평가가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다.
과거 회사에 신입으로 입사에 맡았던 프로젝트는 직원들의 KPI 지표를 설계하고, 이를 기반으로 업무에 참고할 수 있는 대시보드를 만들어 실제 의사결정을 돕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의사결정으로 향상되는 지표가 평가 자료가 되었다.
열정 가득한 신입의 패기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만든 지표와 대시보드에서 직원들의 의사결정이 시작되고, 그 결과가 평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부담과 책임으로 다가왔다.
부족했지만, 지표를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애썼고,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대시보드를 활용하기 쉽게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지표와 대시보드 활용 사례를 직접 찾아 아카이빙하고, 직원들의 업무 도메인을 이해하기 위해 업무 경계를 넘나들었다.
데이터 정합성에 문제가 있을 때면 메신저로 직원들의 문의가 쏟아졌고, 쉴 새 없이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야근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퇴근을 위해 회사 밖을 나서도 다음날 출근할 때까지 머릿속에서 업무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싫지 않았다.
프로젝트를 통해 조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내가 만든 시스템이 실제 의사결정 단계에서 어떻게 반영이 되고 있는지도 가시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프로젝트가 왜 필요한지, 그리고 나는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공감대가 있었고 그게 내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프로젝트는 자리를 잡았다
지표와 대시보드는 정착됐고,
시스템은 안정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다.
이제는 지원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같은 일이라면, 리소스를 줄여보세요
그렇게 업무의 방향은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 중요한 건, 더 도움 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결과를 더 적은 리소스로 만들어내는 일이었고 운영 업무 효율화가 미션이 되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됐다. 여전히 중요한 프로젝트였고, 같은 값이라면 더 적은 노력을 들이는 게 합리적이었다. 다만 과거에 내가 공감했던 일의 이유와,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이유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변화를 더 이상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더 고도화할 게 많은데... 더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부터였다. 이 프로젝트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야근을 하던 일상에서 벗어나고,
메신저 문의는 줄어들어 몸은 편해졌다.
하지만 오히려 마음은 불편해졌다.
월급을 받고 다니는 회사라면, 내가 원하는 일만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회사 프로젝트라면 자연스럽게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심지어 프로젝트 실패로 맥 빠지게 종료되는 비관적인 상황도 아니었다. 어쩌면 4년이라는 시간은 조직이 바라보는 더 큰 방향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흐려지자, 업무를 위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내 안에서 미세한 거부감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더 이상 예전처럼 몰입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깊이 몰입했던 순간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공감이 분명했을 때였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나온 지금, 내가 하려는 일 앞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여전히 같았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려 하는가?
흐려진 이유를 다시 찾고,
다시 일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오늘도 스스로에게 되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