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성격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나는 태어나서 줄곧 한국에서만 살다가 대학교 때 처음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살다 보니 어느샌가, 아니 순식간에 라고 해야 하나? 나는 그들을 닮아 버렸다. 아마 외국에 살아 본 이방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그 정도가 조금 심하다. 일본에 온 외국인 유학생들은 성격이 전과 크게 달라지곤 한다. 즉 일본인 같아진다.
일본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곳이다. 일본에서 잘 적응하려면 남들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고 튀지 말아야 한다. 늘 조심하고 눈치를 봐야 한다. 일본인은 특이하게 행동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이지메 문화도 일본에서 시작된 것 아닌가. 일본에는 특이한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을 한 사람이 많다 보니 일견 개성이 존중받는 곳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일본인이 남의 눈치를 너무나도 심하게 보기 때문에, 무례한 행위(남을 빤히 쳐다보기)를 하는 것에 대한 자기 검열이 심한 것뿐이다. 일본인은 전철이나 버스에서 통화를 하지 않는다. 재채기를 하는 것도 눈치 본다. 남의 어깨에 아주 살짝 부딪쳐도 굽신거리며 연신 사과한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이 친절해서’라고 생각하셨는가? 그들은 그냥 무례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남에게 미움받거나 욕먹는 일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일본에서 3년 간 재일교포 아이를 과외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아이가 한국인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에 처음 과외를 시작했는데, 그때 그 아이는 무척 활발하고 말이 많은 파워 E 성격이었다. 그런데 일본인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성격이 돌변해 버렸다. 아이 어머니 말에 의하면, 같은 반 학부모들에게서 전화가 몇 번 왔다고 한다. “댁네 아이가 수업 때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반 분위기를 흐리니 조용히 하도록 시키세요.”라고… 아이가 잡담을 한 것은 아니었고 그냥 수업 시간에 손 들고 발표를 많이 한 것이 불만인 모양이었다. 미국 같은 영어권 국가 같으면 그저 바람직하게 여겨질 일이, 여기 일본에서는 ‘발표 많이 하는 것 = 혼자 관심받는 것 =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는 점점 소심해졌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으로 변해 버렸다. 즉 어엿한 일본인이 되었다.
그런 일본 사회였지만 나도 미움받으며 살기는 싫었다. 스스로 남의 나라에 온 마당에 그 사회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내가 많은 부분에 순응했다. 매사에 가짜로 굽신거리며 가면을 쓰고 관심 있는 척, 상냥한 척을 했다. 진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법은 조금씩 잊어버렸다. 일본인에게서 친절함을 느낀 적은 있어도, 따뜻함을 느낀 적은 없다. 그들은 가짜 감정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진짜 감정을 말할 줄도, 스스로의 감정을 느낄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