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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퀴터 Dec 08. 2022

일본에서 살찌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랑은 조금 결이 다릅니다 (한술 더 뜹니다)


일본은 외모로 사람의 가치를 차갑게 평가하는 곳이다.


거기 살고 있자면 인간의 내면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외관상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들만이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외모지상주의로 치자면 한국도 비슷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에 두 나라는 조금 다르다.


일본에서는 외모를 초월한 매력 따위 있을 수 없다. 한국이라면 그런 매력의 존재 자체는 가능하지 않은가? 외모와 무관하게 성격이나 태도가 매력적인 사람들이 한국에는 많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살찌거나 못생긴 축에 속하는 사람은 다 주눅 들어 있다. 마치 죄지은 것처럼. 그래서 일본인들은(특히 젊은 여성들) 병적으로 마름에 집착하거나 외모를 꾸미는 데에 오랜 시간을 소비하곤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하드웨어에서 최선의 결과물을 끌어내는 것은 일본 여성이라면 누구도 게을리해선 안 될 노력이며, 평가당해 마땅한 여자력(女子力)의 요소인 것이다. 대학교 때는 점심 식사를 180ml짜리 주스 한 개로 때우는 여학생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렇게 산 적이 있다. 특히 옷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블로그에 올리기 위한 스태프 코디 사진을 찍히기 시작하자, 다이어트를 하는 게 무슨 의무같이 느껴졌다. 그때 내가 무엇보다도 원한 것은 비쩍 마른 몸이었다. 그걸 손에 넣으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훨씬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에 200칼로리 정도만 먹었다. 눈앞이 빙빙 돌았지만 그렇게 해서 몸무게가 빠지자 기분이 좋았다. (그 아르바이트를 그만둠과 동시에 해방감을 느끼며 다시 원래대로 먹었다)


그리고 한 번은 라이브 하우스에서 재즈 밴드와 함께 노래하는 보컬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적이 있는데, 거기 매니저가 면접에서 나를 보자마자 키와 몸무게를 정확히 맞추고(그걸 맞춘 것도 미친놈 같다) 여기서 10kg를 빼라고 했다. 그때 나는 얼마나 일본 사회에 찌들어 있었던지, 그 따위 말을 듣고도 보컬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몇 번 더 연습하러 갔다. 참고로 그 라이브 하우스는 전혀 이상한 업소가 아니었고, 진짜로 노래와 재즈 연주만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거기서 노래하려면 살을 10kg 빼야 한다는 말에 수긍했다. 그때 나는 정상 체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 앞에서 재즈 노래를 부르려면 비쩍 마른 체형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더없이 옳은 말처럼 들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도 계속되는 매니저의 무례한 언동에 나는 점점 우울해진 자신을 발견했고, 어느 순간부터 그의 전화를 받지 않고 잠적했다. 그 뒤로도 몇 달간 전화가 걸려 왔지만,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연습하러 가지 않았다.


재즈 보컬 알바는 무슨.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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