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용이라고 하기엔 너무 솔직한
어젯밤에 네이버 메일에서 <나에게 쓴 메일>을 보다가, 우연히 일본에서 대학교 3학년 때 쓴 글을 읽었다. 그걸 읽고 나니 그때의 나 자신이 좀 좋아졌다. 대학교 수업에서 약 스무 명 앞에 나가 발표하기 위한 글인데 우스울 정도로 솔직하게 써 놓았기 때문이다.
그 글의 번역은 아래와 같다. 대학에서 들은 일본어 수업에서 <의태어로 표현하는 나>라는 주제로 발표한 대본이다. 아마 의태어가 다섯 개 이상 포함되도록 써야 했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ㅇㅇ학부 3학년 ㅇㅇㅇ입니다. 출신은 한국입니다. 전혀 이야기해본 적 없는 사람도 많네요. 늘 흘깃 보기만 하고 인사도 안 해서 미안했습니다. 앞으로는 우물쭈물하지 않고 밝게 인사할 테니 잘 부탁합니다!
저는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계기로 여기(일본)에 왔습니다. 꿈꾸던 유학이었지만 현실은 바라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뭘 해도 일본인의 반만큼도 따라가기 힘든데, 그런 저를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 스스로 정해서 일본까지 왔고 불평하고 있을 입장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갑갑한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틀에 한 번 꼴로 머리가 아파질 정도로 울었고, 급기야는 대학 따위 중퇴해도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마음이 이미 너덜너덜해, 미소는 어떻게 짓는 거였지 싶을 정도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주변에서는 ‘차분하다’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는 차분하다는 말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고 반에서 제일 시끄럽고 촐랑대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차분하다’ = ‘어둡다’로 들려 슬펐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진로를 확실히 정하고 나서부터는 이런 갑갑한 기분이 싹 없어졌습니다. 이젠 남은 1년 반의 일본 생활이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졸업하면 한국으로 돌아가 아동문학 출판사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해외 그림책과 어린이 도서를 수입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아마 연봉은 무척 낮겠죠. 그래도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분야를 고르고 나서부터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 꿈을 생각하며 힘을 냅니다.
대학교 3학년 때 그런 걸 다 깨달은 것 치고는 꽤나 오래 빙빙 돌아 고생했군.
글을 좀 더 많이 써둘 걸 그랬다. 10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그때의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조금 잊어버렸다. 이틀에 한번 머리가 아파질 정도로 울었다는 것도, 대학을 그만두고 살아갈 방도를 궁리했다는 것도, 웃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아니 쓰고 안 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써놓고도 주기적으로 다시 읽지 않은 것이 문제인가? 한 번 깨달은 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몇 년 후에 다시 깨닫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