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회사 이야기 - 다국적기업 -

나에게 스토커가 생겼다고?

by 퀴터


나는 서른 살의 나이에 이미 일곱 군데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 하나를 중퇴한 이력을 갖게 되었다. 이제부터 이어질 글은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나의 지난 직장생활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일을 시작했다. 마음이 급한 탓에 3년 반 만에 졸업요건을 다 따놓고 마지막 학기는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4년 만에 졸업을 못할 줄 알았다. 그래서 늘 불면증에 시달리며 학점을 꽉꽉 채워가며 수업을 들었는데 그 결과 3년 반에 졸업요건이 다 채워져 버렸다. 아버지는 내가 졸업 후 서울에 월세로 원룸을 구해 놓고 놀고만 있자 그럴 거면 방을 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구직 사이트에 허겁지겁 이력서를 뿌리고 얼렁뚱땅 직장을 구해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했다. 그게 나의 첫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


돌아보면 나는 어떤 직업을 갖겠다거나 어떤 일을 하겠다는 진지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 듯하다. 하고 싶은 일은 없었다. 가능하면 일 자체를 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저 ‘절대로 하기 싫은 일’만 피해서 월세나 벌자는 생각이었다. 특히 그 당시 나는 일본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의 평가나 사회적 지위에 관심도 없고 크게 의식도 하지 않았다. 그냥 구직사이트에서 ‘일본어’ ‘영어’ 키워드로 검색해 그나마 나와 맞아 보이는 회사를 골랐다. 이런 식의 주먹구구식 취업 방식의 배경에는 일본 유학생활에서 받은 영향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완전히 허무주의에 빠져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빈 껍데기처럼 되어 돌아왔다. 정확한 이유를 간결하게 딱 잘라 말하긴 어렵다. 다만 잦은 지진과 더불어 무미건조한 가짜 인격으로 살아가는 일본인들을 몇 년간 쳐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바싹 말라비틀어지기 딱 좋았다.


처음에 내가 지원한 자리는 내가 유학했던 나라인 일본과 관련된 직무였으나, 사장은 나를 다른 부서에 배치하고 싶어 했다. 그것은 사업개발팀이었다. 팀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작고(나를 제외한 유일한 멤버는 팀장이었다) 불분명한 일을 하는 곳이었다. ‘사업개발’을 한다는 이 팀은 회사가 원래 하던 사업과는 거의 관련이 없었으며, 그저 돈 되는 4차 산업 관련 사업이라면 뭐든 손댈 준비가 되어있는 그런 부서였다. 회사에 돈은 차고 넘치게 많으니,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여 기존 사업에만 매달리지 말고 새 사업에 통 크게 투자하자는 것이 사장과 외국인 회장(해외 거점의 회사였다)의 생각이었다. 문제는 그 사장과 회장과 팀장은 한 마음 한 뜻이었고 나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시아 각국의 비즈니스 미팅에 참여하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몸이 다 상해가며 일했고, 심지어 수술 후 입원해 있다가도 해외 출장을 가겠다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극도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나로서는 회사와 돈에 목숨을 바치는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나는 내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회사를 신경 쓰는 부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그저 나와 이 회사가 안 맞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인지 매일 매 순간 고뇌했다.


게다가 내 상사인 팀장은 친구가 별로 없는지, 나에게 하루 종일 개인적인 이야기와 인생 조언을 늘어놓곤 했다. 관심 없는 이야기에 호응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고역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얼마나 잘해주는지,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등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지치지도 않고 몇 시간이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메신저 연락은 끊길 줄을 몰랐다. 답장이 늦으면 전화를 해대기도 하고 심지어는 내 집 앞에 데리러 와서 자신의 가족 생일 식사에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그 식사 자리에 그들의 가족이 아닌 멤버는 나뿐이었다. 나는 불쌍한 스톡흘름 증후군 환자처럼 그녀가 나를 챙겨주는 것이 숨 막히는 일인지, 아니면 고마워할 일인지 분간하기 어려워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입사한 지 반년쯤 지나 내 어깨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염증이 생겼다. 정형외과 의사 말로는 야구선수 혹은 고령자처럼 어깨를 많이 쓴 사람에게나 나타나는 증상이라며 이상하다고 했다. 운동도 하지 않고 무거운 걸 들 일도 없고 아직 20대 중반이던 내게 염증이 생길 이유가 없었다. 내 생각으로는 이 기괴한 회사가 주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몸에 염증으로 나타난 것 같다. 확실하다. 오른쪽 어깨가 나아가자 왼쪽 어깨에 똑같은 염증이 생겼다. 마치 양쪽 어깨에서 이제 제발 그만하고 퇴사하라고 호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 회사의 팀장이 나에게 토요일 밤 11시에 전화해온 것을 받지 않았더니 카톡으로 ‘연락이 안 되면 곤란하다. 늦은 시간에도 주말에도 바로바로 답해 달라.’라고 보낸 것을 봤을 때 마음속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던 퇴사의 열망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나는 그들에게 퇴사의 뜻을 전하게 되었다. 마음이 식고 결심이 굳는 속도는 참 빨랐다. 그 당시 나는 잡히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로스쿨에 가고 싶다’는 거짓말을 했다. (그 거짓말이 나중에 잔인한 현실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사장은 그 말을 믿었고, 지금까지 내게 투자한 것은 아쉽지만 나의 미래를 위해 보내주겠다고 했다. 퇴사 후에도 팀장은 나에게 개인적인 연락을 계속했다. 회사 일이 많아서 힘들다는 얘기나, 오늘 자신이 뭘 먹었는지, 언제 출장을 갔다가 언제 오는지 등을 미주알고주알 내게 보고했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를 차단해버렸다. 그러고 나서 몇 년이 지나도록 그녀를 떠올릴 때면 그녀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그녀 나름대로 나를 좋아하고 챙겨주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행동을 돌아보면 스토킹 가해자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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