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만족도와 연봉의 반비례
나는 첫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을 쉬었다. 어깨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하니 요양할 시간이 필요했다. 월세 걱정이 되자 구직 사이트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첫 회사에서 많은 것을 배운 후라, 일중독자들의 집합소 같은 곳은 피했다. 참고로 왜 내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중소기업만 알아보았는지 설명하자면, 그냥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위 명문대를 졸업했으니 주변에서는 대기업에 지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대기업의 어떤 부서에도 매력을 느끼지 못한 데다가 대형 조직에 소속되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한번 대기업 공채 면접에 간 적이 있었는데, 다른 지원자들의 답변을 듣고 있으면 모두가 출세와 경쟁에 열광하는 로봇들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이 완벽하게 준비한 면접 답안을 줄줄 읊으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지원자들과 함께 면접장으로 줄지어 이동할 때에도 기존 사원들이 사원증 목걸이를 걸고 우월하다는 듯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재수 없다고 느꼈다. 그런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리 없었다. 그 뒤로 다시는 대기업에 지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 지원했느냐 하면 작은 잡지회사였다. 패션이나 디자인 계열은 아니었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외관이나 업무방식이나 옛것 그대로를 간직한 그 잡지사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꼈다. 그리고 당시 내 면접관으로 들어오신 편집장님이 너무 훌륭한 인격을 지닌 분이라, 따뜻한 인격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나로서는 마음이 크게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기자로 입사하여 그곳에서 기사를 쓰게 되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이 다 훌륭한 인격체였다. 선배도 상사도 사장도 모두 서로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었다. 그 후 지금까지도 나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그 편집장님의 성함을 말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진정으로 존경하는 것은 높은 연봉이나 화려한 경력이 아니라 그저 따스하고 고결한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내가 작성한 기사에 대한 피드백을 주실 때에도 ‘정말 잘 썼는데 이 부분은 이렇게 바꾸면 더 좋을지도 몰라. 여기도 이렇게 해야 하고. 내가 미리 말해줬어야 했는데 바빠서 말을 못 해줬네. 미안해.’라는 식의 감동적인 화법을 사용하셨다. 인생에 그런 분은 처음 봤을 정도로 너무나 겸손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그 뒤로도 편집장님 같은 분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곳을 왜 그만두게 되었는가 하면 연봉이 문제였다. 나는 해외 명문대를 나왔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작은 잡지사의 연봉에서 오는 굴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또 퇴사 고민을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기에 헤드헌터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형 로펌 패러리걸 자리로, 거기 소속된 일본인 고문을 위해 법문서 등을 번역하고 지원하는 직무였다. 그 고문은 일본 국세청 같은 곳에서 일하다 나와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으로, 경력을 인정받아 한국에 스카우트된 사람인 듯했다. 한 마디로 한국말도 못 하면서 돈이 좋아 여기까지 이민 온 사람이었다. 대형 로펌인 만큼 패러리걸도 연봉은 섭섭지 않게 받을 것 같았다. 나는 잡지사 편집장님께 솔직하게 분야를 바꿔서 이직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한 달 단위로 돌아가는 월간지 특성상 다음 호 제작을 시작하기 전에 그만둬야 했기 때문에, 나는 패러리걸 직무 면접을 보기도 전에 퇴사 의사를 전했다(당연히 그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편집장님은 내가 이곳에 있기는 아까운 인재라며 잘되면 좋겠다고 따뜻하게 응원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유일하게 아쉬운 직장이 이 잡지사다. 여기를 그냥 계속 다니다가 그 경력으로 이직을 할걸 그랬나 생각한 적이 몇 번 있다. 아마 돈을 많이 못 벌어도 분명 글 쓰는 일은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보기 좋게 패러리걸 자리에 탈락했다. 면접에서 ‘어떤 업무를 맡고 싶냐’는 질문에 너무 야망 있는 척한 것이 패인이었다. 내 패기 있는 대답을 듣고 그들의 눈가에 꺼림칙한 그늘이 비치는 것을 눈치챈 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패러리걸이라는 자리는 변호사 밑에서 철저하게 아랫것인 신분으로 일해야 하는 만큼, 나름대로 머리는 좋은데 야망이나 자긍심은 접어둔 채 별생각 없이 위에서 시키는 잡일이나 하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자리였다. 물론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지만 면접장에서 나도 모르게 평범한 기업 면접 스타일의 대답을 내뱉고 만 것이다. 자고로 패러리걸 직무를 제외한 일반적인 면접에서는, 일 욕심이 많고 야망 있는 척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런 식의 연기로 면접관들을 쉽게 속이곤 했다. 나는 연기를 못하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면접관들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히 속아 넘어갔다. 그리고 막상 같이 일해보고 나서 내가 일 욕심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챈 뒤 내게 실망하고 서운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일 욕심’이라는 게 있을 리가 있나? 인센티브를 엄청나게 많이 주면 모를까. 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조언하듯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내가 없어도 모든 게 순조롭게 잘 돌아가길 진심으로 바랐다. 나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상태인 것이 가장 좋았다. 드라마에서도 주인공들이 일에서 인정받거나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되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돈을 더 받게 되는 일은 기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돈 때문에 기뻐하는 게 아니었다. 패러리걸로 일하면서 자부심을 찾기는 힘들 만한 부류가 바로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었다.
몇몇 대형 로펌에서는 사내 메일 주소를 만들 때, 변호사와 변리사는 대문자로, 일반 직원들은 소문자로 만들어 한눈에 누가 어떤 계급에 속한 자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정말이지 눈살이 찌푸려지는 역겨운 문화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서 일하면 올림푸스 신전에서 일하는 노예의 기분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거기에서는 신분제가 표면화되어 있고 로펌에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