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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의 하루 Jan 25. 2024

연말을 위한 위로송(연말송)

콜드플레이의 Everything's not lost에 대한 해석

  나에게는 일명 연말송이라는 게 있다. 연말마다 생각나서 듣고 또 듣게되는 노래. 많지도 않고 딱 한 개이다. 바로 콜드플레이의 <Everything's not lost>라는 곡이다. 이 곡에서는 나름 경쾌하면서 웅장한 도입부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콜드플레이의 보컬 크리스 마틴이 감성적이며 모호한 가사를 쏟아낸다. 이어지는 밴드 사운드는 1년이라는 긴 시간의 마지막을 장식할만큼 분위기가 무겁기도 하고, 지금까지의 일들을 좋은 것만 남기고 잊어버리자는 가사와 함께 다소 가벼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요즘 안 좋은 일들을 세어보면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들도 있어

그러나 내 어께 위에 좋은 것들만 남겨 놓고

다른 것들은 저 멀리 몰아냈지


그러니 너가 무시당했다고 느낀다면

혹은 너가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한다면

나도 날 괴롭게 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게

모든 걸 잃지 않기를 바라며

Coldplay - Everything's not lost (번역 : 쿼카의하루)



  나는 좋은 가사의 조건은 중의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중의성이란 듣는 이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음을 말한다. 두 번째 문단의 마지막 문장이 중의성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왜 모든 걸 잃지 않기 위해서 굳이 괴롭게 한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는 말인가. 가장 그럴듯한 시각으로는 두 번째 문단에 등장한 '너'를 위로하기 위하여 너를 걱정하고 있음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은 험하고 친밀한 관계는 언제든 바뀔 수 있으니 너 자체든 너와의 친분이든 잃고 싶지 않다는 말일 수 있다. 무시당하고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극단적인 선택은 얼마든지 할 가능성이 있다.(요즘 뉴스에 나오는 한 비극적인 사건의 당사자만 봐도 그렇듯이) 소중한 '너'를 잃지 않기 위해 우울한 너의 시선에 공감하고, 너와 같아지기 위해 노력하여 결국에는 너에게 위로가 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해석의 포인트는 화자 시선 자체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 해석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서 시작한다. 굳이 첫 번째 해석으로 하려면 '모든 것'이 아니라 '너를 잃지 않기를 바라며'가 맞지 않을까? 마지막 문장이 화자 자체의 시선만이 담긴 혼잣말과 같다고 볼 때 '모든 것'은 '안 좋고 괴롭게 하는 일과 좋은 일을 포함한 모든 것'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즉 화자는 1년이 됐든 몇 년이 됐든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며 안좋았던 추억까지도 잃기 싫을만큼 그리움에 젖어있는 것이다.


  나도 이 가사의 화자와 같은 그리움을 느꼈던 적이 있다. 안 좋은 추억마저도 지나간 세월에 대한 상징이 되어서 돌아갈 수 없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향수에 젖을 때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억은 현재에 의해 채색되고 미화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화자가 과거에 대해 느낀 애상적인 감정에 머리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곡은 특유의 묘한 분위기와 우울한 뉘앙스로 인해 더욱 깊이 와닿는 위로를 경험할 수 있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꺼내주려면 일단 물에 뛰어들거나 최소한 물가로 가야 한다. 가사의 화자 본인 스스로가 우울해하고 힘들어한다는 점에서 듣는 나를 비롯한 리스너들은 묘하지만 따스한 동질감을 느낀다. 마치 밝은 목소리의 '힘내!'라는 말보다는 '너도 힘들지'라는 말이 가끔은 더 큰 위로가 되듯이 말이다. 하지만 직설적으로 나도 힘들다는 표현없이 단지 가사를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야지만 화자가 '너'못지 않게 우울한 감정임을 파악할 수 있다. 마치 위로를 건네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감정 상태를 가늠해보듯이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이 곡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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