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컨트리 로드

by 쿼카의 하루

"아니, 사장님 사다리차 비용은 제외한 금액이라고요?"


영신은 전화기를 귀에 대고 느릿한 말투로 묻는다. 그의 목소리는 다소 크고, 말을 시작할 때 '아니'라는 말을 하면서 약간씩 더듬는 버릇이 있다. 아니, 사다리차 비용은 포함인 줄 알았는데, 예 일단, 알겠습니다. 다시 전화드리겠다고 말하며 영신은 전화를 끊고는 경숙을 보며 이야기한다.


"아니, 참 사다리차 비용이 별도로 들어가네. 이러면 거의 20만원돈은 더 깨지는데. 완전 날강도들 아니야?"


경숙은 그러게, 라고 말하며 영호의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는 조용히좀 해줄 수 없냐고 말한다. 영호는 마침 시골로 이사를 간다는 말을 듣고 약간 들뜬 상태라, 오랜만에 기타를 케이스에서 꺼내서 조금 튕겨보고 있었다. 이럴 땐 컨트리 음악이라며, 알고 있는 전원풍의 노래를 모두 연주해보는 영호였다. 영호는 어머니에게 알았다고 말하고, 기타를 내려놓는다.


이삿짐 기사를 부르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영호네 가족은 모두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부딪히고 다투며 문제의 해결이라는 결론에 겨우 다다르곤 했다. 영신은 사다리차 비용은 무조건 빼야한다는 쪽이었고, 가능하다면 서비스가 좋은 쪽을 꼭 선택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영신의 지론에 따르면, 이삿짐을 부르는 데는 첫번째는 서비스고 두번째가 가격이라고 보았다. 영호는 아직 어린 나이기도 했고, 주도권이 없다시피 해서 어떤 것이든 얼른 선택했으면 좋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경숙은 영신이 지지부진하게 진행하는 것이 너무 답답한 나머지, 영신과 영호에게 한소리씩 한다. 굳이 우리는 포장 이사를 할 필요가 없지 않냐는둥, 포장 비용을 대는 것보다 영호랑 같이 셋이서 옮기는 게 낫다는둥, 영신에게 빨리 예약하고 이삿짐 정리하는 걸 도와달라는둥.

영신은 경숙에게 그럼 너가 전부 다 해보라는 말을 속으로 삭다. 그리고는 다소 갑갑하지만 줏대있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셋은 영신의 차에 하나둘씩 탑승한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기 때문에, 에어컨을 틀 필요는 없었다. 영신은 차를 107동 야외 주차장에서 빼내고, 대로변으로 나와서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한다. 영신은 핸들을 잡던 한쪽 손을 놓고, 여유있게 운전한다. 그러다 휴대폰을 들어서 올드팝을 재생한다. 컨트리풍의 기타 소리가 시냇물처럼 유려하게 흐른다.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 영신은 전주를 콧노래로 따라부르다가, 후렴 부분을 가성으로 장식한다. 마운틴 마마, 테이크 미 홈, 컨트리 로드. 경숙은 영신의 노래를 감상하다가 조수석에서 곯아떨어져 자고 있고, 영호는 창밖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생각에 잠겨 있다.


영호네 가족은 가평 휴게소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아직 정오가 지나지 않은 11시 무렵의 태양은 벌써 따사로웠다. 그늘에 들어가면 금방 서늘해지는 완벽하게 좋은 날씨였다. 햇빛에 가린다해도, 선선한 바람은 그곳에 언제든지 있었다. 영호는 휴게소를 거닐며 그런 생각을 했다. 완연한 가을이었다.



영호네 가족은 총 4시간을 달려 전주의 작은 마을인 물포리에 도착했다. 구불구불한 국도를 지나다가, 마을의 시가지를 발견한다. 작은 카페도 있었고, 마트도 있었다. 그리고, 지물포, 정육점, 옷가게, 방앗간 등을 지난다. 옛 추억에 정겹다가도 상념에 잠긴듯 영신은 말한다. 여기 아직도 그대로네. 국도의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면서 경숙은 약간 속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영신의 어릴적 집은 이미 헐린 지 오래다. 옛 것은 자취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라져 버렸고, 고향에 남아있는 영신의 가족은 없다. 성창이 잠깐 거주할 수 있게끔 마련해준 주택은 바로, 성창의 어머님이 사는 집의 바로 옆 집이었다. 영호와 영신은 앞다투어 차의 트렁크에서 짐을 빼내어 빈 집에 풀었다.


겉보기에 아주 낡고 오래돼 보이는 집이었지만 내부에는 꽤 많은 것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방으로 이어지는 입구는 총 두 곳이었고, 처마에는 빨랫줄이 걸려있었다. 거실과 부엌이 분리되어 있으며, 안방에는 큰 창이 나 있어서 여름에 더위를 식힐 수 있게끔 되어있다.


"아이고 오셨어요"


하얗게 샌 백발을 가진 성창의 어머님이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다. 머리는 뽀글뽀글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파마를 했고, 몸뻬 바지와 꽃무늬 상의 그리고, 굽은 등을 가지고 계셨다. 할머니는 눈이 실처럼 가느랗게 변하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진지한 말투로 한마디를 하셨다.


"시골에서 살려믄 인심이 최고 중요한 것이여"


"명심하겠습니다. 아주머니"


아이고 옳지 그래. 할머니는 영신이 마치 아이인것 처럼 살갑고 다정하게 대해주신다. 할머니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고양이의 무리들이 할머니쪽으로 모여든다.


"웬 고양이래"


경숙은 깜짝 놀라면서도, 귀여워하며 고양이쪽으로 손짓을 한다. 할머니는 허허 웃으시면서 뭐 먹으러 왔나 보네. 라고 말하며, 주섬주섬 고양이들이 먹을 것들을 짊어지고 온 가방에서 꺼내신다. 그리고 멸치, 땅콩, 말라 붙은 수박 껍질같은 것을 던져 준다. 고양이들은 그런 것도 맛있게 잘도 먹는다.


경숙이 고양이들을 부르며 한가롭게 놀고 있을 때, 영신은 경숙에게 슬그머니 다가간다. 그리고 할머니와 아들인 영호에게 마치 보라는 듯이 경숙의 눈을 그윽히 바라보며 경숙의 입을 맞춘다. 할머니는 그런 둘을 바라보며, 감탄하듯 한마디 한다.


"하이고, 둘이 금슬이 좋구먼?"


https://youtu.be/uu7j_xljCRY?si=sK-DwAKe-pSSA4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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