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의 대가를 읽고 나서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서평

by 쿼카의 하루

이 단편소설들은 뭐랄까. 이미지들은 작가가 마치 관찰하며 써나간 듯이 명료하다. 그런데 작품 속 화자는 그저 관찰자의 눈으로 적당한 거리에서 그것들을 유심히 지켜볼 뿐이다. 이게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거야? 하고 고민할 즈음에 인물들과 사건은 확실한 심상으로 나의 머릿속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길지 않은 분량의 이야기가 내 몸을 모두 통과한다.



단편이 붙은 장르들은 다 그런가보다. 조금 알듯 말듯 하는 순간에 이미 서사는 내 몸을 통과해서 지나가 있다. 단편 영화도 그렇고, 단편 소설도 그렇고, 몇몇 동화도 그렇다. 추상화를 보는 느낌과도 비슷하다. <대성당>은 단편소설의 대가 레이먼드 카버의 12편의 단편소설을 엮고, <원더보이>로 유명한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한 소설집이다.





SE-4d120df6-9a61-4261-a04e-ceb194ccf7a3.jpg?type=w773


어느 강의에서 들은 내용이 기억이 난다. 소설할 때 '소'는 작을 소(小)라고. 소설은 큰 그릇이 아니라 작은 종지에 불과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심오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 같은 작품도 알고 보면, 작고 소소한 메세지를 주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평론가같은 고급 독자가 아닌 한, 작가의 의도를 뛰어 넘어서 작품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소설은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고자 하는 허구의 이야기에 들어간 조그만 주제의식. 그걸로 충분하다.


SE-e71aa3be-dc34-4d32-bcfd-4d4948a8cbaf.jpg?type=w77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12편의 소설들을 모두 소화하기 조금 어렵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말에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재미를 주는 소설도 간혹 있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깃털들>과 <칸막이 객실> 그리고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정도였다. 소설들의 공통 주제는 '가족'이다. 주인공이 직장 동료의 가족들에게 영향을 받는 소소한 이야기(깃털들)도 있고, 아들과 심각하게 다툰 아버지의 이야기도 등장한다.(칸막이 객실) 그런가 하면, 반전과 훈훈한 결말이 인상적이었던 소설도 있는데(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여기까지..


%EB%A0%88%EC%9D%B4%EB%A8%BC%EB%93%9C_%EC%B9%B4%E3%85%93.jpg?type=w773


미국 출신 작가 레이먼드 카버(1938~1988)는 단편소설을 특히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생업이 따로 있어서 장편을 쓸 만한 여유가 많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카버는 단편소설을 매우 간결하고 명료하게 쓰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미니멀리즘 작가의 대표주자라고 한다.


작가 중에는 풍성한 수사와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전달하려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단문에 적확한 단어를 쓰려는 작가도 있다. 카버의 경우 후자로서 뭔가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문장 읽는 맛이 있는 것 같았다. 과하고 느끼하지 않고 지금 읽어도 세련된 느낌이다.



2018f4bce1b246deba4367ee0faa6b42.jpg?type=w773




좋은 소설은 대부분 신파 아니면 휴머니즘 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카버의 경우에는 휴머니즘이 담긴 작품들을 많이 썼다. <대성당>도 마지막에 모호하고 추상적인 결말을 맺는데,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카버 느낌의 휴머니즘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항상 그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며,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결말이다.



쿼카의 결론 : 내 생각에 단편소설이라는 장르는 '시성비'가 있는 것 같다. 시간 대비 성능. 장편소설이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한 감동이나 재미는 없더라도, 두고두고 기억할지도 모르는 재미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화, 목, 토 연재
이전 03화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